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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 과거를 담다" 양태오 공간 디자이너

이 스토리는 <박지호가 만난, 미래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들>4화입니다

3줄 요약

  • 양태오 디자이너의 작업 철학은 '과거의 재탄생', '미래를 위한 과거'입니다. 과거의 것을 현대화해 미래를 담은 콘텐츠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한방 화장품 브랜드 이스라이브러리를 런칭하며 소격동에 쇼룸을 오픈했습니다. 2000년 한의학 역사가 '사람을 위한 마음이 모인 아카이브'임을 깨닫고 이를 브랜드와 공간에 담았습니다.
  • 디자인의 영역에서 비즈니스의 영역까지 확장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알린다는 목표에서 출발하면 전략의 '옳은'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양태오 디자이너. 북촌에서 태오양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한국적 미감을 살린 공간 디자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지훈

박지호 편집장의 말

양태오 디자이너는 미디어에서 흔히들 규정하는 '한옥을 현대화 한 기수'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아쉬운, 무수한 열린 가능성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약 2년 전, 소격동에 '이스라이브러리'라는 한방 화장품 브랜드 쇼룸을 오픈했는데요.

이 공간에 들어서면 작고 아름다운 소반에 차와 약과가 담겨져 나오며 손님을 맞이합니다. 북촌에 살면서 동네에 사는 '소반 장인'과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이즈를 줄여 미적으로 가장 현대적인 방식의 소반이 탄생했다고요.

핵심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입니다. 양태오 디자이너가 즐겨 인용하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고, 그를 위한 가장 중요한 소스 중 하나가 과거라는 것이죠.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를 맞아 내가 사는 집과 동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결국 우리가 갖고 있던 로컬리티를 어떻게 현대의 방식으로 풀어낼지가 관건이 될 거라는 겁니다.

그는 시카고 미술대학 재학 시절, 시카고미술관을 수시로 드나들며 인류의 문화유산과 예술의 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암스테르담에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 밑에서 일하며 과감한 콘셉트와 디테일한 작업이 만났을 때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귀국 후 막상 그동안 한국과 전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자각이 들자, 한옥을 지금 방식으로 리뉴얼해 직접 거주하기 시작했죠. 이후 우리의 전통과 21세기의 모던을 어떻게 결합하고 조율할 수 있을지를 가장 최전선에서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은 영국 드고네이와의 책거리 콜렉션, 국립경주박물관 로비 작업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고요.

이 밖에도, 스튜디오를 확장하지 않고 작은 규모를 유지하며 새로운 비즈니스의 방식을 열어가고 있는 양태오 디자이너를 지속적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많습니다.

모든 것의 출발은 '본질'

양태오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한방 화장품 브랜드 이스라이브러리 쇼룸. 소격동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갤러리처럼 정갈한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최지훈

Q. 공간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어디에서도 흔히 보지 못한 가구들이 잘 어우러진 느낌이예요.

원래 있던 고가구를 재활용한 거예요. 해체해서 새롭게 조립했습니다. 고가구 장인들과 협업했는데 생각보다 더 멋지게 나온 것 같아요. 간접 조명과 유리를 더해서 모던한 느낌도 함께 갖고 있죠.

저는 웬만하면 동네 안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동네에 찾아보면 장인이 많거든요. 궁금한 게 있으면 걸어가서 물어보고, 장인 분들이 직접 오셔서 수리해주시기도 하고요. 번거로운 물류 과정도 줄일 수 있어서 이런 커뮤니티가 좋아요.

입구에 있는 스툴은 공병 녹여서 만든 거예요. 폐플라스틱 재생산을 하려면, 최소로 필요한 양이 3톤이래요. 대기업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유튜브에 찾아보니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플라스틱이 어느 정도 온도에 녹아서 어떻게 형태를 잡을 수 있는지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고 배워서 의자를 만들었어요(웃음). 이런 방식이 이스라이브러리에서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방향입니다. 

Q. 환경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에 더 많은 분들이 체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네, 저도 코로나19 이후에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일단 해외출장이 중단됐죠. 사무실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올 여름에 비가 많이 온 걸 인지했습니다. 워낙 바쁘게 살다보니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기후변화에 대한 라이프스타일적 솔루션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어요.

평소에 최범 디자인평론가를 존경해요. 그 분이 말씀하시는 공예적인 삶을 깊이 생각해봤어요.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내가 사용한 것도 다시 활용할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스튜디오와 브랜드에도 공예적인 삶에 대한 고찰을 담고 싶어요.

사실,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라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가끔 큰 회사에서 좋은 스펙을 가진 분들이 저희 스튜디오에 와서 솔루션을 달라고 하시면 이해가 안될 때가 있어요(웃음). 아이러니한 거죠. 저희는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라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이스라이브러리
화장품 보틀은 고서가 탑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돌 모양의 뚜껑은 본질을 상징한다. 이 보틀로 2019년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에서 베스트 라인업 부문 위너 선정이 됐다. 그 밖에도 TOPAWARDS ASIA 2020 패키지 다지안상을 수상했다. ⓒ최지훈

Q. 예술, 브랜드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이스라이브러리 론칭으로 이어졌고요. 

많은 분들이 한방 화장품을 모던하게 재해석한 점에 흥미를 느끼더라고요. '이스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이 참 독특한데, EATH는 Evolutionary, Achievement from Traditional Heritage의 약자입니다. '이스'는 고대영어로 '쉽다', '부드럽다'는 뜻이고, 지구(earth)를 연상하는 단어이기도 해요.

한의학을 알아야 이 브랜드를 디자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의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한의학의 2000년 역사가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모인 아카이브'더라고요. 이 땅에 나는 것을 모아 사람을 편하게 하는 학문이요. 여기에 있는 화장품도 그 아카이브의 일부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테리어도 한의학의 아카이브적인 면, 사람을 위한 마음을 담으려고 했어요.

Q. 북촌과 서촌을 아우르는 동네가 좋은 시너지가 나는 듯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로컬 비즈니스를 구축한다는 느낌이 들고요.

연결성이 좋은 동네죠. 그동안 북촌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거 같아요. 제가 로컬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 제가 받은 영감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한국 전통 서재를 표현한 공간이다. 둥근 창으로 한옥이 보여 소격동 특유의 분위기를 더한다. 왼쪽 아래 독특한 모양의 스툴이 눈에 띄는데, 폐플라스틱을 녹여 상판을 만든 업사이클링 공예 작품이다. ⓒ최지훈

Q. '전통과 서구적인 것의 결합'은 근대 이후 모든 디자이너의 관심사이지만, 그만큼 이루기 어려운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디자이너님이 바라보는 전통과 모던의 결합은 어떤 것인가요?

스튜디오 운영 모토가 있어요. Invention of the Past 혹은 Past for the Future. '과거의 재탄생' 또는 '미래를 위한 과거'란 뜻입니다. 제 화두는 과거의 것을 현대화해 미래를 담은 콘텐츠로 보여주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저는 공예에 관심이 많고요.

공예라고 하면 공예품과 같은 디자인을 떠올리는데, 저는 공예적인 마인드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예적 삶은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요. 아름다운 디자인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요. 본질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본질입니다.

예를 들어 소반의 본질은 접객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 사람들에게 본질을 알리고 이 문화에 눈뜰 수 있도록 도와주는거죠. 이걸 먼저 선행한 후에 공예품으로서의 소반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지역 장인과 함께 만든 미니어처처럼 작은 소반 위에 화장품을 진열한 감각이 돋보인다. ⓒ최지훈

Q. 이 공간에서 소반을 경험하고 나니 새롭게 다가오네요. 하나 더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사랑방을 생각해볼까요? 사랑방은 선비가 공부하면서 사람들을 만난 공간입니다. 선비는 사랑방에서 스승, 가족, 친구들, 동네 사람들, 먼 곳에 사는 친척들, 보부상을 만나죠. 선비는 책뿐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에서 배우는 것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랑방의 본질은 수양(修養), 나 자신을 만드는 공간인 거예요.

그런데 현대에 와서 사랑방은 집 어디에 있는지, 그 안에는 어떤 가구가 있는지... 이런 데이터적 접근을 하니까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는 겁니다. 껍데기가 변한다고 본질이 달라지나요? 본질을 이해한다면, '만약 조선시대가 지금까지 유지됐다면 사랑방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런 질문으로 접근하겠죠.

저는 인테리어, 가구, 화장품, 향을 만들지만 이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적은 없습니다.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예요. 이스라이브러리는 한방의 우수성과 건강한 삶을 알리기 위해 화장품이란 도구를 사용하는 거고요.

2020년 6월에 작업한 드고네이와의 한국 컬렉션 작업도 같은 맥락이에요. 책거리를 그렸는데 과거에 책이 있는 풍경이 아닌, 선비의 수양이라는 본질을 표현했습니다.

Q. 모두가 그렇게 작업하길 원하지만 사실 쉽지 않습니다.

사실 비즈니스를 하면 숫자에 휘둘릴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브랜딩이든 마케팅이든 프로모션이든 본질을 알린다는 목표가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략의 '옳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거든요.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로비 리모델링을 했는데, 그곳에 있는 유물이 '진열장에 있는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물건'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토기의 패턴이 벽에, 말 안장의 디테일을 조명에 활용될 수 있잖아요. 이렇게 3~4세기에 만들어진 물건이 21세기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요. 이런 목표와 철학이 없으면 비즈니스는 길을 잃게 돼요.

디자이너가 비즈니스를 마주하는 방식

이스라이브러리는 두 곳으로 운영한다. 이곳은 쇼룸이고, 계동길에 있는 리딩룸(readingroom)은 브랜드의 아카이빙 장소로 운영한다. ⓒ최지훈

Q. 디자인을 비즈니스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디자인이 비즈니스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린 듯해요. 그전에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혼자 저항한 것에 가깝죠. (웃음)

초창기에는 제 일에 공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한옥 전문가, 한옥 짓는 사람… 저는 미래를 말하는데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처럼 말하더라고요. 왜 한국적인 것에는 조금만 전통이 들어가 있어도 '민속촌'으로 바라보나요? '발렌시아가'나 '디올'을 보고 올드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 용기를 얻은건지도 모르겠어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이 제 할 일을 만들어주었어요. 전통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고요.

이스라이브러리를 오픈하고 첫해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디자이너가 비즈니스를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비즈니스를 할 때 많은 분들이 계획을 세우시잖아요. 저는 첫달 매출계획 같은 걸 세워본 적이 없어요. 처음에 어떤 스토리와 어떤 행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만 세웠죠. 이 브랜드를 통해 어떤 가치를 이야기해야 하는지만 집중했어요. 한방의 모던함과 친환경이요.

Q. 지금은 어떠신가요, 브랜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네. 2년여가 지난 이 시점에서 보면,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냈던 게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다가갔던 것 같아요. 이제는 비즈니스적으로 제가 요구하지 않아도 비즈니스를 잘하는 분들이 찾아오시거든요. 포시즌즈 호텔에 입점한 것도 그렇고요.

탄탄하게 가려면 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해요.

스튜디오 대표로서는 요즘 일이 많아져서 오히려 너무 비즈니스화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상업성을 바라고 절 찾아오시진 않을 거니까요.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찾아드리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진행한 박지호 편집장 ⓒ최지훈

Q.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다산초당으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선비의 기다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어요. 선비 스스로 수양의 완성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왕의 부름으로 내 뜻을 펼칠 기회일 수도, 죽음에 대해 기다릴 수도 있는 거겠죠. 다양한 것에 서려 있는 선비의 기다림이요.

그런데 선비가 그 기다림을 행할 때, 가짜나 조악한 것을 만든다거나,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다거나, 화려한 춤을 추면서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웃음) 기도하는 마음이었겠죠. 숭고한 것을 기다리면서, 자신 역시 그 숭고한 대상에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이 감성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Q. 이스라이브러리 상품 중에 '차분한 독서가'라는 향이 있는데, 그런 선비의 마음이 담겨 있는 건가요?

네. 선비의 서재에서 묵향이 나려면 책 1만 권이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책이 있는 게 다가 아니라, 1만권이 읽혀져야 묵향이 났다고 해요.(웃음) 이런 선비의 마음가짐을 향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페이퍼 플라워라는 향도 있어요. 사극에서 장원급제한 선비가 쓴 모자를 본 일이 있을 거예요. 보면 종이꽃이 달려있는데, 그 종이꽃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셀러브레이트하고 활기찬 느낌의 향이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좋아하세요. 이런 감성이 우리나라 예전에도 존재했다는 것. 또, 호롱불, 소반 같은 결과물이 아닌 이런 감성들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걸 재밌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양태오 디자이너 역시 평생 이 일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어떤 타이틀이 붙은 미학이 생긴다면, 그 역사에 ‘양태오’라는 이름이 새겨있기를. 그래서 더 선비의 기다림의 미학에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최지훈

Q. 선비의 기다림. 지금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가치네요.

'패션은 돌고 돈다'고 하는데 라이프스타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기존 라이프스타일이 사회 변화에 맞춰 조금씩 변형되기도 해요.

지금 코로나19라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위기를 맞았는데, 과거에서 이 혼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소셜한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굉장히 중심이 잡힌 삶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이라는 곳으로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잖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집을 잘 활용할지, 여기에서의 삶이 더 깊어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좋은 기회를 맞았어요. '넷플릭스를 판다거나 하는' 서구적인 라이프 스타일만 바라볼 게 아니라 '그전에는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죠.

Q. 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됐죠.

코로나로 '원래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건 긍정적인 효과라고 봐요. 여행만 봐도 사람들이 국내의 좋은 곳을 찾기 시작했잖아요.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로컬리티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어요.

연말에 국립현대미술관과 크리스마스 트리 프로젝트를 공개할 예정이에요. 우리가 원래 가진 콘텐츠, 즉 로컬적인 요소를 트리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했어요. 설치와 해체 과정을 모두 공개해서 다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전시품의 환경 문제도 고려했고요. 이것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인식하지 못했을 주제예요.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전시가 될 듯합니다. 12월 초 국립현대미술관의 크리스마스트리를 기대해주세요. (웃음)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간은 재해석될 수 있다 

ⓒ최지훈

Q.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시카고 미술대학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세요.

디자인을 배울 때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은 큰 차이가 있거든요. 마네킹과 사람, 영혼과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죠.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 재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마치 미술처럼. 제 작업이 아트(art)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스토리텔링을 통해 메시지는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카고 미술대학의 가장 좋은 점은 시카고미술관을 하루에도 몇 번씩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웃음) 학생증만 보여주면 줄도 서지 않았죠. 인류가 쌓아온 보물을 보면서 예술이 왜 위대한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예술로 겸손함을 배웠어요. '이 작업의 메시지는 뭐야?', '이 스튜디오의 역할은 뭐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는 걸요.

Q.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마르셀 반더스와 함께 일했고요.

사람들이 어떤 것에 환호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디자이너였어요. 네덜란드 출신인데, 더치(Dutch) 디자인이라는 로컬 콘텐츠를 모던 디자인의 영역으로 가져왔죠. 상업성과 콘텐츠를 잘 엮은 사람이었죠.

Q. 상업적이란 말이 대중을 사로잡았다는 의미잖아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작업에 테크놀로지를 적용하는 게 빨랐어요. 인스턴트적인 면이 있지만, 깊이 있는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유머나 '하이테크-하이터치'(*)에 대한 감각을 잘 활용했어요. 쇼맨십이라고 저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는 거겠죠.

* 예술을 통해 기술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요즘 들어 그와 그의 작업이 더 떠올라요. 2019년 6월 바쉐론 콘스탄틴과 홍콩에서 전시했는데, 조선과 고려시대 탑을 3D 프린팅했어요. 영원불멸하다고 여겨지는 석공예, 그중에서도 탑은 사람의 영혼(사리)을 모시는 곳으로 더 의미가 있고요. 시대가 바뀌어도 존재하는 영혼에 대한 의미를 담았어요.

그런 작업, 하이테크와 크래프트(공예)를 동시에 작업할 때마다 마르셀 반더스와 일한 경험과 그 시간에서 받은 영감이 튀어나오는 듯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 홍콩 전시 ⓒTeoyang Studio

Q. 과거를 다루지만 가장 미래적인 콘텐츠를 담으려는 방식이 좋네요.

하루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저는 겁이 많고 꽤 소심한 편이에요. 일 외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일에 대해선 굉장히 예민해요. 스튜디오 확장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있어요. 이메일 하나하나에도 브랜드가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듯해요.

그래서 매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 두려움이 큽니다. 특히 전통을 콘텐츠로 활용하는 일은 고증이 중요하기 때문에 틀려서는 안되니까요. 연구와 공부로 일상이 가득 차 있습니다.

Q. 국립경주박물관 작업도 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휴관 중입니다.

12월쯤 재개관할 텐데,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에요. 박물관 입장에서 리모델링은 10년 또는 20년에 한 번 있는 큰 행사거든요.

박물관 인테리어를 해보고 싶지 않은 디자이너가 있을까요? 하지만 기회가 정말 드물죠.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하고요. 저 역시도 10년 가까이 이 화두로 일해오지 않았다면 잡지 못할 기회였을 거예요.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암스테르담에서 일하면서 전통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어요. 교과서에서조차 한옥은 '수박 겉핥기'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미학이나 감성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없습니다. 특히 민간 한옥, 일반적인 한옥을 경험할 기회도 없고요. 저 역시 한옥에 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처음 북촌에 이사 왔을 때, 북촌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샀는데 그 사진첩에 담긴 아름다움이 계속 없어지고 있어요. 디자이너는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내주는 게 소명입니다. 앞으로도 한국적인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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