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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억과 맞바꾼 아파트 상가에 스타벅스가 없는 이유

이 스토리는 <오프라인 비즈니스, 상상력이 미래를 바꾼다>8화입니다


*이 콘텐츠는 네오밸류의 제작비 후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 사례라 찾기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보는 게 쉽지 않았죠. 그래서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선택의 폭을 좁히기 위해 2가지 기준을 정했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꿀 만큼 기존의 방식과 다르고, 동시에 한국에서 일어난 진화여서 더 의미있는 사례로요. 그렇다면 7화에서 설명했듯이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시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행지가 되거나 생활권이 되거나 혹은 둘 다가 되어야 할 때, 어떤 경우가 패러다임을 바꾸면서도 한국의 특수성이 담긴 사례일까요?

국내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혁신, '아파트 상가'에서 찾다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우선 여행지가 되는 경우를 떠올려봤습니다. 이태원, 연남동, 을지로, 성수동 등 지역 일대가 자연 발생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동네로 발전한 케이스입니다. 각 지역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지역성을 살린 모범적 사례들이지만 전세계적 흐름 중 하나인 로컬 문화와 도시 재생의 연장선이지 패러다임을 바꾼 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의 한국 버전인 셈이죠. 또한 쇼핑몰이나 아웃렛 등 부동산 개발업체나 유통 업체가 주도한 곳들도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지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유형은 이미 글로벌하게 자리 잡은 현상입니다.

무역센터의 코엑스몰, IFC센터의 IFC몰 등 오피스 생활권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채널화시키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지가 된 곳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작에 보편화된 모델이니 우리나라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여행지를 살펴봐도, 생활권을 둘러봐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상황에 특화된 사례를 찾기가 어려워 보였습니다.

벽에 막힌 듯 했죠. 그래서 그는 머리도 식힐 겸 TV를 켰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뉴스에서 부동산 이슈를 다루면서 항공샷을 보여줬는데, 거기엔 네모 반듯한 아파트가 화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신도시가 있고 아파트가 있겠지만, 이렇게 빽빽하게 아파트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신도시가 개발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죠.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시설로 자리잡은 건 우리나라의 독특한 상황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그는 바로 TV를 끄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흐름에 맞춰 아파트 상가를 혁신한 곳이 있다면, 패러다임을 바꾸면서도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겼으니까요. 이러한 관점으로 조사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상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앨리웨이(Alleyway) 광교'입니다. 그래서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변화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러 앨리웨이 광교를 찾아 갑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1. 분양이 아니라 운영으로

이렇게 아파트 상가가 큰데 스타벅스가 없는 건가?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앨리웨이 광교를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에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 흔한 스타벅스도 안 보이고,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도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브랜드 카페 대신 개성 있는 복합문화공간 내에 카페가 함께 있었죠. 또한 카페가 있을 법한 명당 위치에 '책발전소'라는 서점이 있었습니다. 앨리웨이 광교에서 스타벅스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의 모객력과 예상 매출을 모를 리 없었죠. 그럼에도 그런 매장이 보이지 않는 풍경에서 롯폰기 힐즈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7화에서 설명했듯 부동산 디벨로퍼 모리빌딩은 지식산업 시대에 적합한 '수직 도시'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롯폰기 힐즈를 만들었죠. 그리고 이 철학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시설이 모리빌딩 53층에 있는 모리 미술관과 49층에 위치한 아카데미 힐즈였습니다. 도쿄의 전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최상층부에 수익성 높은 레스토랑과 바를 넣은 것이 아니라 문화 시설로 구성했으니까요.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명당엔 대형 카페'라는 공식을 깬 앨리웨이 광교도 롯폰기 힐즈와 마찬가지로 개발 철학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침 미디어 업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앨리웨이 광교 도슨트 프로그램을 신청해 궁금한 부분들을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도슨트와 함께 매장을 둘러보다가,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을 인지합니다. 아파트 상가에서 몇 개씩이나 볼 수 있는 부동산 중개소가 보이지 않았죠. 물론 아파트 매매나 전월세 계약을 해야 하니 없지는 않았지만, 앨리웨이 광교 뒤편에 전형적인 부동산 중개소와 거리가 먼 모습으로 하나만 위치해 있었습니다. 명당에 대형 카페를 넣지 않은 것처럼, 관리를 하지 않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성이었죠.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상권이 형성되기 전에는 임대료를 감당할 만큼의 매출을 낼 수 있는 업종이 부동산 중개소이기 때문에 아파트 상가에는 부동산 중개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분양하지 않고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퇴사준비생 이모씨가 던진 질문에 대한 도슨트의 답입니다. 앨리웨이 광교의 매장 구성이 다른 이유였죠. 보통의 경우, 부동산 디벨로퍼는 아파트 단지를 개발한 후 아파트 상가를 분양합니다. 그러면 매출이 바로 발생하니 자금 흐름을 개선할 수 있고, 입점할 업체를 찾거나 임대 조건 등을 협의해야 하는 등의 번거로운 과정이 없어지니까요. 돈이 되고, 신경 쓸 일이 줄어드니 분양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디벨로퍼의 손을 떠나면 아파트 상가가 이상해집니다.

어떤 매장을 입점시킬지는 상가를 분양받은 쪽의 몫입니다. 당연하지만 수분양자는 임대료를 가장 많이 지불하는 곳에 매장을 내줍니다. 아파트 상가 전체의 구성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죠. 이렇게 임대료를 중심으로 '부분 최적화'를 하다 보면 '전체 최적화'가 무너집니다. 편의점, 세탁소, 부동산 중개소, 병원, 학원 등 시장 논리 혹은 부동산 디벨로퍼가 정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필요 시설이 입점하겠지만, 매장을 넘나들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은 아닌 곳이 되죠. 구조적으로 아파트 상가의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채널화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진화하는 흐름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기도 하죠.

앨리웨이 광교를 개발한 '네오밸류'는 아파트 상가의 이러한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분양 대신 운영을 택했습니다. 이럴 경우 입점 업체를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야 둘째 쳐도, 상가를 분양하지 않아서 포기해야 하는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요? 산출 범위와 방식에 따라 달라질 텐데 대략적으로 보면 3500억원 수준입니다. 숫자로만 판단한다면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규모지만, 경제적 논리 대신 철학적 접근을 우선시했기에 가능한 일이죠. 그렇다면 네오밸류가 3500억원과 맞바꾼 아파트 상가 개발 철학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라이프스타일 센터'

삶의 방식을 바꾸는 거점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긴 철학입니다. 마치 간편식이 나와서 식생활의 방식이 바뀌었고, 캠핑카가 등장해서 여행의 방식이 달라졌으며, 스마트폰이 탄생해서 생활의 방식이 총체적으로 변했듯이, 앨리웨이 광교로 동네에서의 생활 방식을 새롭게 하겠다는 거죠. 간편식, 캠핑카, 스마트폰 등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시도에 '더 나음'이라는 방향성이 전제에 있는 것처럼, 라이프스타일 센터를 표방하는 앨리웨이 광교도 더 나은 동네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깔려 있습니다. 부동산 디벨로퍼의 경제적 이득과 운영 편의성에 밀려서 뒷전에 있던 ‘사람’과 ‘생활’을 맨 앞에 두겠다는 거죠. 그래서 네오밸류는 스스로를 부동산 디벨로퍼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로 부릅니다.

더 나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네오밸류는 아파트 상가의 '시설'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신경을 썼습니다. 롯폰기 힐즈가 지식산업 시대에 오피스 워커들이 보내는 시간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수직 도시'로 공간 구성을 달리했다면, 앨리웨이 광교는 라이프스타일 시대에 동네 주민들이 시간을 가치있게 쓸 수 있도록 '라이프스타일 센터'를 통해 공간을 새롭게 했습니다. 도심까지 멀리 가지 않고 집 밖으로만 나가도 각자가 추구하는 방식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말이죠. 집은 잠을 자는 곳일 뿐만 아니라 삶을 사는 곳이니까요.

패러다임의 전환 #2. 앵커(Anchor) 테넌트가 아니라 에코(Echo) 테넌트로

이 매장은 처음 보는 거 아닌가?

있어야 할 스타벅스와 같은 앵커 테넌트가 없는 것도 눈에 띄는데, 다른 곳에는 없는 것 같은 매장들이 있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식물원', '두수고방', '스트롤', '씽크주' 등 오프라인 매장에 대해 스터디를 열심히 한 퇴사준비생 이모씨도 처음 보는 매장이었죠. 그뿐 아닙니다.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브랜드들도 곳곳에 보였습니다. '책발전소', '아우어 베이커리', '동네 정미소', '연남 방앗간', '밀도' 등 MZ 세대에게 인기지만 아직 지점이 많지 않은 브랜드들도 앨리웨이 광교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채널화 흐름에 맞게 공간을 구현해 놓은 거죠.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입점해 있는 매장들을 보면서, 분양 대신 운영을 선택한 것으로 이곳을 설명하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운영을 한다고 해서 매장 구성을 이렇게 갖출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네오밸류처럼 아파트 상가를 분양하지 않고 운영하는 방식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접근이긴 하지만 앨리웨이 광교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건 아닙니다. 몇몇 부동산 디벨로퍼도 시도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리웨이 광교가 차별화되는 이유는 매장 운영 방식에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아파트 상가를 직접 운영할 때 핵심적으로 고려하는 건 앵커 테넌트입니다. 집객력을 가진 브랜드를 찾아 입점시키는 거죠. 부동산 디벨로퍼 업계에서는 전통적으로 극장, 마트, 서점 등을 앵커 테넌트로 여겨왔고, 최근에는 대형 카페, 인기 맛집, SPA 브랜드 등을 앵커 테넌트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디벨로퍼가 직접 운영하는 아파트 상가에 가보면 대형이거나 유명한 앵커 테넌트들로 공간의 대부분을 구성했습니다.

당연히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앵커 테넌트가 많으면 아파트 상가가 활성화되고, 그곳에서의 삶이 더 나아지니까요. 하지만 앵커 테넌트를 중심으로 아파트 상가를 구성하는 건, 아파트와 상가를 별개로 보는 접근입니다. 아파트 상가라는 특수성을 고려했다기 보다 쇼핑몰을 아파트 상가에 옮겨 놓은 셈이죠. 그렇다면 아파트 상가는 일반적인 쇼핑몰과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아파트 상가의 본질적 속성은 상가가 아니라 아파트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주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동네'라는 개념이 생깁니다. 네오밸류는 이 점에 집중해, 분양 대신 운영을 택하면서 아파트 상가의 본질적 속성인 동네에 초점을 맞춥니다. 앨리웨이 광교를 동네의 일부로 바라보고, 이곳에서 사람, 지역, 문화를 연결하는 로컬 커뮤니티를 구축해 기존 쇼핑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과 추억을 제공하겠다는 거죠. 앨리웨이라는 이름에도 동네 골목길의 정겨움을 복원하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점 브랜드를 선정할 때도 앵커 테넌트보다, 이러한 철학에 공감하고 메아리쳐 줄 에코(Echo) 테넌트를 찾는 거죠.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여기에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봤습니다. 부동산 디벨로퍼가 운영하는 여느 아파트 상가들처럼 결과론적으로 인기 있는 매장이 들어설지라도,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겠다는 뜻에 함께 하는 매장이 모여서 뿜어내는 바이브는 철학적인 접근 없이는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책발전소, 아우어 베이커리, 동네 정미소, 연남 방앗간 등의 매장을 지날 때마다 '살기 좋은 동네'가 메아리치는 듯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죠. 다른 곳에서 이미 운영하던 브랜드야 네오밸류의 철학에 공감해 앨리웨이 광교에 입점했다 해도, 처음 보는 매장은 어떻게 이곳에 자리 잡은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도슨트에게 물어봅니다.

동네에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해줄 적절한 브랜드가 없을 경우 직접 운영하기도 합니다.

한국 전통 사찰음식을 세계 속에 소개한 정관 스님의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두수고방', 자연을 공간 안으로 들여 가드닝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식물원', 집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주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씽크주', 제품이나 브랜드의 스토리를 중시하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스트롤' 등 10여 곳은 동네에 필요한데 마땅한 브랜드가 없어서 네오밸류가 직접 투자해 운영하는 매장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뿐 아니라 식물원 내에 있는 빵집인 '밀도'는 동네에 꼭 필요한 브랜드라고 판단해 인수를 했다는 거죠. 이처럼 네오밸류는 에코 테넌트를 섭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에코 테넌트에 직접 투자하면서, 아파트 상가를 분양하지 않고 운영하는 패러다임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3. 사는(Buying) 곳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으로

골목길이라 앨리웨이인데 광장은 왜 있는거지?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헷갈렸습니다. 골목길을 뜻하는 앨리웨이라는 이름과 너른 광장이 있는 공간 구성에 차이가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앨리웨이 광교를 전체적으로 둘러보기 전에는 골목길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광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니 휴먼 스케일의 골목길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었죠. 그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광장이 있는 중앙부도 매장으로 구성하고 골목길을 냈다면 앨리웨이의 컨셉도 바로 전달할 수 있고, 매출도 늘릴 수 있었을 텐데 어떤 이유로 네오밸류는 골목길 대신 광장을 택한 걸까요?

도슨트에게 물어봤었어야 했으나 이미 투어 프로그램이 끝난 후였습니다. 게다가 광장에는 모든 작품이 이슈가 되는 '카우스(Kaws)'의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와 환상적이면서 가변적인 작품을 만드는 '재닛 에힐만(Janet Echelman)'의 '어스타임 코리아(Earthtime Korea)'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예술 작품이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죠. 그래서 그는 쓸데없어 보이는 호기심은 접어두고 광장에 앉아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 혼자만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작품을 배경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풍경을 보다보니, 그의 머릿속에 도슨트가 설명했던 내용이 새록거렸죠.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을 넘어 소소한 문화를 즐기며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 그게 바로 라이프스타일 센터입니다.

라이프스타일 센터는 힙하고 인기 있는 매장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에코 테넌트로 매장을 구성했다 하더라도,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라이프스타일 센터의 핵심은 스타일 있게 일상을 즐기도록 생활의 방식을 바꾸는 공간이라는 거죠. 쇼핑센터였다면 광장을 없애고 매장을 더 늘리는 게 나았을지 모르지만, 라이프스타일 센터라면 광장을 두고 그곳에서 동네 사람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공간을 이렇게 구성하는 건 형태적으로 골목길과 달라질 수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골목길과 맥을 같이 하는 시도입니다. 앨리웨이 광교는 골목길 그 자체를 복원하겠다는 게 아니라 골목길이 가진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걸 목표로 하니까요. 건물 대신 '사람'을, 매출보다 '생활'을 앞세우는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 형태가 꼭 골목길이 아니어도 괜찮은 거죠. 오히려 공간이 비워져 있어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광장이 더 필요합니다. 투어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도슨트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었죠.

앨리웨이 광교는 광장에 예술 작품을 설치해두는 걸로 라이프스타일 센터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광장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면서, 동네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죠. 버스킹 공연, 플리 마켓, 김장 담그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주기적인 이벤트로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건 라이프스타일 제안이기도 하면서, 예전의 동네가 가지고 있던 정겨움,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성을 지금의 방식으로 회복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호주 서커스단 '스트레인지 프루트(Strange fruit)'와 같은 대형 공연을 기획해 '동네 부심'을 키워주기도 하죠.

이처럼 네오밸류는 공간에 콘텐츠를 채워 넣으면서, 분양하지 않고 공간을 직접 운영한다는 의미를 확장합니다. 어쩌면 확장이 아니라 그동안 많은 부동산 디벨로퍼들이 간과하던 운영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한 것으로도 볼 수 있죠.

©트래블코드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앨리웨이 광교를 떠났습니다. 나오는 길에도 조명을 받은 재닛 에힐만의 예술 작품이 오로라처럼 하늘거려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죠. 이곳은 동네 주민의 시간뿐만 아니라 퇴사준비생 이모씨처럼 외부에서 온 여행자의 시간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주차장에 가보니 그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방문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오래 시간을 보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아파트 상가에 외부인이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미디어가 되고, 채널화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놀러 간 게 아니니, 퇴사준비생 이모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앨리웨이 광교에서 보냈던 시간을 비즈니스적으로 복기해봅니다. 두수고방에서 제철 재료로 만든 건강한 점심을 먹고, 책발전소에 들러 대형 서점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책을 몇 권 사고, 밀도에서 앨리웨이 광교점 시그니처 메뉴를 맛보고,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샀습니다. 지출이 적지 않았으나 머물렀던 시간에 비하면 시간당 지출은 크다고 볼 수 없었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 알게 된 브랜드도 있었고, 이미 익숙한 브랜드의 매장을 구경하며 새롭게 알게 된 점도 많았지만 소비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5화에서 설명했듯 매장이 판매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를 알리는 미디어의 역할을 한 거죠. 그의 머릿속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명이나 다녀갔을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처럼 매장의 용도가 변했다면 6화에서 정리했던 수익 모델, 핵심 역량, 운영 방식뿐만 아니라 매장을 둘러싼 인프라와 매장을 평가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매장이 파는 공간이라면 매출만으로도 매장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지만, 매장이 미디어라면 그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가설을 세우고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또 다른 진화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미디어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그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한 걸까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네오밸류 공식 홈페이지

앨리웨이 광교 공식 홈페이지

사람 중심 공간으로 꾸민 '예쁜 골목길" 아파트 상가, 매일 가고 싶은 명소로 뜨다 (동아비즈니스리뷰)

한 번 방문하면 살고 싶어지는 곳, 앨리웨이 광교 (디자인프레스 블로그)

오직 '이곳'에서만 존재하는 브랜드를 만들다 (디자인프레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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