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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창업가 핀다 대표, 1700조 시장에서 찾은 기회

이 스토리는 <폴인이 만난 사람>15화입니다

폴인이 만난 핀다 이혜민 대표_일할 맛을 놓치지 않는 사람 

30대에 창업 네 번. 핀테크 기업 '핀다(FINDA)'를 운영하는 이혜민 대표를 소개하는 수식어 중 하나입니다. 창업을 여러 번 했다고 비슷한 분야만 판 것도 아닙니다. 화장품 샘플 구독·유기농 식재료 배송·건강 코칭에 이어 현재 6년 넘게 운영 중인 대출 정보 플랫폼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창업 이력이 "성장 과정과 연결된다"고 소개합니다. 20대 중반~30대 초반을 거치며 '그때의 내'가 가장 잘 이해하는 아이템을 창업 소재로 택했다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고요. 또 결과물이 된 아이디어를 고객이 구매해 경험케 하는 '맛'을 보면, 이 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 대표는 어떤 맛에 빠진 거였을까요?

인터뷰·글 : 이건희 에디터

좋은 동료와 세상의 문제를 풀 방법을 고민해 실행에 옮기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고객이 구매하는 경험을 한번 '맛'보고 나니, 그 맛을 놓치기 어렵더군요.
서울 삼성동 핀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혜민 대표의 모습. ⓒ송승훈

스페인어 전공한 직장인, '창업'에 도전한 이유


Q. 처음부터 창업을 하는 사람이 되길 꿈꿨나요?

아뇨. 학생 때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남들 만큼 공부하며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죠. 막연히 외교관이 될 수 있을까 해 대학도 서어서문학과로 진학했어요. 스페인어를 배운 적도 없으면서요. 대학에 가서도 미래를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사회 경험을 해보자고 해서 STX지주회사에 입사했죠.

이때부터 변화를 겪었어요. 회사에서 신사업 개발 업무를 맡은 게 계기였죠. 4년 반 동안 사업 아이디어를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고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 취합 업무를 할 수 있었어요. 재밌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기 힘들다는 것도 느꼈어요.

Q. 주인의식에 대한 갈증이 창업으로 이어진 건가요?

네, 그리고 회사 안에서 유리천장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2000년대 후반까지도 제가 일한 곳에선 여성 임원이 전무했거든요. 자연스럽게 MBA 진학이나 창업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지금의 남편(황희승 잡플래닛 대표)이 대학 졸업도 안 하고 창업에 도전하는 모습을 봤어요. 남편 주변에 어울리는 창업가들을 보면서 당시 스물여섯인 나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망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도전했습니다.

Q. 막상 실제 회사 설립을 해보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우선 국내에서 생소했던 '화장품 샘플 구독'이라는 아이템에 흥미를 느꼈어요. 그리고 해외의 성공 사례인 ‘버치박스(Birchbox)’를 벤치마킹한지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어요. 하지만 실행을 하는 건 처음이라 막막했죠. 다행히 로켓인터넷*이라는 회사에서 투자를 받고 인큐베이팅을 세게 받은 게 도움이 됐어요. 마일스톤을 달성해야 다음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거든요.

*로켓인터넷 : 2007년에 세워진 독일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회사. 딜리버리히어로를 키운 곳이다.

투자 3개월 안에 사업을 론칭해야 해서 샘플 공급을 받으려고 무작정 화장품 회사 대표들을 찾아다녔어요. '글로시박스'를 운영하면서 국내 화장품 회사 450곳 중 95%를 만났습니다. 구독 스타트업 개념도 없을 때였지만 유료 회원을 2만5000명까지 모았죠.

Q. 왜 잘 되던 회사를 접고 새로운 도전을 했나요?

사실 첫 회사의 지분을 인큐베이터가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사업이 성장해도 회사 지분을 해외 투자자가 갖고 있어서 한국 실정에 맞는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답답함을 느껴 비슷한 구독 모델을 활용하되 다른 분야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베베엔코'라는 유기농 식재료·유아용품 배송 업체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어요. 지금은 매력적일 수 있지만 2011년만 해도 유기농 식재료가 보편화하기 전이었거든요. 식재료 유기농 인증은 서울시를 통해서 받아야 했고, 콜드체인이라 불리는 신선한 배송도 쉽지 않았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함께 일하던 팀과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Q. 모든 창업이 성공으로 이어진 건 아니네요.

네, 월급을 못 주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래서 절실하게 새 기회를 찾았죠. 마침 3번째 창업을 고민하던 때는 애플리케이션(앱) 춘추전국시대라 웹 서비스가 전부 모바일로 전환을 시도할 때였습니다.

저희도 모바일 전환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지만 개발자가 없었죠. 그래서 "우리는 기획·디자인·마케팅 모두 잘 할 수 있으니 좋은 개발팀을 소개해달라"고 투자자에게 요청했어요. 그렇게 소개받은 곳이 지금의 '눔'이 된 미국의 개발팀이었어요. '워크 스마트 랩스'라는 이름의 운동 관리 서비스를 운영하던 곳이었죠.

Q. 세 번째 창업을 '눔'의 전신을 만든 팀과 한 거군요.

당시 서비스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달랐어요. 그래서 서비스의 피봇을 제안했죠. 운동 관리가 아닌 '건강 관리'를 하는 것으로요. 또 운동 및 다이어트 메이트를 찾을 수 있는 그룹 서비스를 만들었죠. 변화를 제안하면서 저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성공시킬 수 있으니 3개월만 달라"고요. 실제로 4개월 만에 앱스토어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이혜민 핀다 대표가 이전에 창업한 회사. (왼쪽부터) 글로시박스·베베엔코·눔. ⓒ이혜민 대표 제공

화장품·식재료·건강 다음에 도전한 아이템, '돈'

Q. 네 번째는 '돈'을 활용한 창업을 택했습니다.

'돈'과 관련된 창업을 생각하게 된 2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먼저 금융 비즈니스 자체에 대한 관심이었어요. 눔을 키우면서 의료와 닿는 개인 운동 데이터를 많이 확보했어요. 그 데이터가 새로운 보험·금융 상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발견했죠. 또 사람들이 건강해질수록 보험료 할인율은 높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요. 그런데 더 깊게 들어가려 하니 금융 규제가 보였어요. 무작정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을 품고 눔을 떠난 뒤, 직장 없이 지내다가 결정적인 상황을 만났어요. 전세 대출을 받으러 다닐 때였습니다. 저를 '창업 준비자'로 소개하고 대출 상담을 하려니 상담이 안 된다는 거예요. 대신 소득이 있는 남편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났어요. 이런 상황을 몇 차례 반복해 겪었거든요. 그런데 더 생각하니 이건 풀어야 할 문제더군요. 내 정보를 다 내어주고도 대출 조건이라는 정보를 얻지 못하는 문제가 보였습니다.

Q. 금융 업계에서 창업하는 건 이전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금융기관이 쥔 대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네 가지 방법을 동원했어요. 고객인 척 가서 정보를 듣기도 하고, 대출 담당자와 친해져서 기존 대출중개업에 발송되는 팩스와 이메일을 공유 받기도 했죠. 또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상품 한눈에'라고 내놓은 서비스를 체크하기도 했어요. 마지막 수단으로는 모든 은행에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대출 정보를 비교할 수 있게 하려는 서비스니까 은행의 대출 정보를 보내달라고 한 거죠. 소위 콜드콜을 넣은 겁니다.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너네가 뭔데?"라며 호통치는 분도 있었고, 궁금해서 "만나보자"고 한 분도 있었어요.

Q. 노력이 성과로 어떻게 이어졌나요?

창업 후 첫 제품이 나오기까지 4년 정도 걸렸는데요, 제품이 나왔을 때도 정보가 공유되는 금융기관은 1곳에 불과했죠. 대출 성사 건수도 적어서 오죽하면 1건이 성사될 때마다 저희 팀원이 박수를 칠 정도였어요.

하지만 이전에 회사를 키우며 마케팅한 경험을 토대로 고객의 반응을 빠르게 반영했고, 참여 금융기관도 점차 늘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성장에 속도가 붙었어요. 2020년에는 1년 만에 매출액 6200% 성장, 앱 사용자 1200%라는 숫자를 얻었습니다. 이제 핀다를 통해 고객이 대출 승인을 받은 누적 금액은 200조원 이상입니다.

성장을 하니 이제는 금융기관이 오히려 핀다에 유리한 상품을 가지고 오기도 해요. 오프라인에서만 소개한 상품을 온라인에 옮겨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품의 숫자와 질이 동시에 좋아진 거죠.

핀다 서비스 이미지. ⓒ핀다

Q. 기억에 남는 고객의 반응이 있나요?

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Thank you, FINDA(땡큐, 핀다)"에요. 고객이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면 서비스가 성공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그동안 어쩔 수 없이 고금리 대출을 써야했는데 핀다를 통해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대환할 수 있어 고맙다는 내용들이요.

우리의 서비스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는 후기를 보면 일할 맛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잘 살기 위해 돈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데 그동안 그렇지 못했다는 거잖아요. 앞으로도 정보 비대칭으로 고금리 대출을 받았던 고객이 더 안전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실제로 고금리 대출을 핀다를 통해 더 나은 조건으로 대환하는 건수가 전체에서 50%나 되기도 하고요.

Q. 핀다를 어떤 기업으로 만들고 싶나요?

금융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는 곳이 되고 싶어요. 그 뜻을 담아 회사 이름에 'FIN多(많을 다)'라는 의미도 부여했습니다. 팔자가 핀다는 의미를 담을 수도 있겠네요(웃음).

또 예전에 핀다가 앞으로 ‘금융상품의 아마존’이 되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지금도 같은 마음이지만 속뜻은 조금 다릅니다. 이전에는 그저 다양한 상품을 많이 보여주고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개인화 서비스를 얼마나 질 높게 제공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아직 더 발전해야 한다고 보는 데이터 경쟁력·보안을 더 강화하려고 해요.

이런 노력을 담아 다른 핀테크 서비스와 달리 고객이 어떤 대출을 가지고 있고, 어떤 대출이 제일 좋은 조건인지 알려주는 대출의 AtoZ를 알려주는 서비스가 되고 싶어요. 1700조원 규모, 경제활동 인구 2800만명 중 2000만명이 개입한 대출 시장에서 핀다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30대 중반, 연쇄창업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Q. 계속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어디서 얻었나요?

물론 제가 창업을 네 번 할 줄은 몰랐어요. 돌이켜 보면 하나만 잘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며 허탈할 때도 있죠. 또 나만 실패하는 건 괜찮은데, 내가 설득해서 같이 하자고 한 동료의 인생까지 생각하면 막막할 때도 있습니다. 제 자신이 작아 보일 때도 많고요.

그럼에도 좋은 멤버와 만나 문제를 풀 방법을 고민해서 실행했을 때 고객이 구매까지 하는 경험을 맛보면, 계속 그 맛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목적으로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할 수 있거든요.

창업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지 부닥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창업은 늘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저는 성숙해졌고, 계속 도전해야겠다는 사명감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삼성동 핀다 사무실에서 회사에 대해 설명하는 이혜민 대표의 모습. ⓒ송승훈

Q. 창업가·경영자로서 이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전에 팀 리더급이 모여서 서로에게 가장 맞는 키워드를 주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이때 저한테는 '비전'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들어왔고요, 추진력이라는 키워드도 많이 받았어요.

이런 표현을 받은 거지만 사실 창업·경영 과정을 거치면서 다듬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제 자신이 더 뾰족했어요.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드라이브를 건 적도 많았죠.

사업도 신규사업 경험이 많으니 전략을 말하는 걸 좋아하고 빨리 적용하는 걸 좋아했어요. 돌이켜보면 같이 일한 동료들은 이 부분이 부담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과거에 저는 열정·집요함이었다면, 지금은 이 모든 일이 사람을 위한 일이라 생각해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핀다에서는 서로가 모두 '혜민님'과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부르고요.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서로를 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동료로 보고 있습니다.

Q. 회사 운영을 넘어 앞으로 이 대표는 어떻게 성장하고 싶나요?

이제는 조금 더 큰 화두를 고민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네 번이라는 창업 경험을 회사 안팎에서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스타트업이 생소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기에 그다음을 내다보고 죽을 때까지 내가 경험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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