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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탑동의 디앤디파트먼트,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스토리는 <뉴 로컬 : 발길 이끈 동네의 비밀>2화입니다

3줄 요약

  • 아라리오 제주는 탑동에 남은 세월의 흔적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 건축가 조 나가사카가 기획한 '아라리오 로드'는 '빼기의 공간'이라는 철학이 잘 담긴 프로젝트입니다. 골목과 동선에 주목하며 '보이지 않는 개발'이 되게끔 만들어졌어요.
  • 도쿄의 브랜드 '디앤디파트먼트'가 제주에 마련한 공간에는 세계 11곳 매장 중 유일하게 숙박을 할 수 있는 '디룸(d room)'이 있어요. 잠깐 머무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탑동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죠.


스토리북 <뉴 로컬 : 발길 이끈 동네의 비밀>은 심영규 건축PD가 어반플레이, 가이드라이브와 함께 하고 있는 <로컬 인사이트 투어>를 폴인이 텍스트 리포트로 만든 것입니다. 제주 탑동 편에 이어 '뉴 로컬' 지역의 이야기가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제주의 낡은 영화관, 어떻게 갤러리가 됐을까?

심영규 : '뉴 로컬'인 제주시 탑동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제가 찾은 곳은 '아라리오 로드'입니다. '아라리오 제주'라는 곳이 2014년부터 탑동 일대에서 '타운매니지먼트'를 하며 거리를 활성화한 곳인데요. 대표 프로젝트 이름이 '아라리오 로드'입니다. 이를 운영하는 김지완 아라리오 제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지완 아라리오 제주 대표. ⓒ아라리오 제주

김지완 : 아리리오 로드를 소개하기 전에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를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탑동 타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상징하는 아라리오뮤지엄 3곳 중 하나인데요. 8년 동안 방치된 영화관 건물을 미술관으로 만들었어요. 예술공간 운영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을 살려보자는 취지였죠.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1층 데스크는 과거 프랜차이즈인 KFC가 있던 곳인데요. 지역을 그저 새로 바꾸는 게 아니라 과거를 유지하면서 옛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길 바랐어요. 관광객뿐 아니라 탑동에서 나고 자란 분이 오면 즐거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했죠.

그래서 기존에 있던 노란색 타일을 철거하지 않고 남겨뒀어요. 과거의 것을 남기고 그 위에 새 것을 덧칠하는 과정에서 '재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옛 이름 '탑동시네마'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나머지 공간에선 아라리오가 그간 모은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작품과 이를 경험하는 관객입니다. 공간이 작품과 관객 혹은 관객과 관객이 서로 소통하는 장이 됐으면 했어요. 그래서 인테리어에 힘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직 공사 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의도를 담았죠. 아라리오 로드를 찾아오는 분이라면 여기서부터 여정을 출발하길 추천하고 있습니다.

심영규 : 이어서 주변을 둘러볼게요. 길 건너 'ABC 베이커리'도 탑동 타운 프로젝트의 일부죠.

김지완 : ABC 베이커리는 이태원의 천연발효종 베이커리로 유명한 '오월의 종' 정웅 대표가 컨설팅하는 로컬 빵집입니다.

제가 2014년 탑동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뒤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요.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게 2020년 5월입니다. 그때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이 바로 ABC 베이커리에요.

오픈할 때는 제주를 찾는 1000만명 관광객을 목표했지만, 지금은 이 지역에 사는 100여명 주민을 대상으로 운영합니다. 종류를 늘리거나, 달고 자극적인 메뉴를 판매하기 보다 매일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선보이죠. 심플하지만 진정성 있는 브랜드가 되려는 탑동 프로젝트의 방향과도 잘 어울렸죠. 요즘엔 단골이 많아져서 오후 4시면 모든 빵이 소진된다고 해요.

'빼는 건축'이 의미 있는 이유는

심영규 : 그럼 아라리오 로드의 골목길 안쪽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전반적인 공간 설계를 일본 건축가 조 나가사카(Jo Nagasaka)*가 기획했다고요.

* 오사카 출신의 조 나가사카는 도쿄 국립대학 건축학과 졸업 후 도쿄에 스키마타 건축 사무소(Schemata Architects)를 열었다. 2011년 버려진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솝(Aesop) 아오야마점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블루보틀(Blue Bottle) 아오야마점(2015)과 시나가와점(2016), 전시장처럼 옷을 디스플레이한 공간 데상트 블랑(Descente Blanc) 마루노우치점(2016), 직원 공간과 매장 공간을 함께 노출한 패션 매장 캠퍼(Camper) 신-마루노우치점(2017) 등의 건축과 공간을 맡았다.

김지완 : 네. 저희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골목과 동선'이었어요. 골목을 통해 탑동의 모든 프로젝트가 연결되게 하고 싶었어요. 곳곳에 퍼진 건물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그 안에 사람들이 오가는 유기적인 디자인을 하려 했죠. 그러려면 한 명의 건축가가 총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 나가사카와 협업을 시작했죠.

조 나가사카의 기획 중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바로 옆 공간은 그의 '빼기의 공간'이라는 철학이 잘 드러난 곳입니다. 전반적인 콘셉트는 '보이지 않는 개발'이에요.

건축가 조 나가사카의 초기 구상안 스케치. ⓒ아라리오제주

과거 버거킹이 입점한 건물을 그대로 활용해 겉모습이 화려하진 않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반전을 느끼도록 했어요. 1층은 건물 외벽을 뚫어 필로티 형태로 디자인해 기둥 역할을 하면서 1층 포터블(Portable) 매장으로 편히 접근할 수 있게 했어요. 건물 오른쪽 3분의 1을 덜어낸 것도 큰길에서 골목길로 들어오는 동선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골목길 입구에 위치한 카페 '크림'도 '빼는 건축'이라는 콘셉트 아래에 탄생한 공간입니다. 크림은 홍대에서 유명한 '푸하하크림빵'을 운영한 임현 셰프님이 제주로 이주해 만든 브랜드인데요.

원래 전시장으로 사용하던 이 공간에는 미술관 벽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하지만 조 나가사카의 제안으로 진지한 미술관의 분위기를 가볍게 할 수 있는 골목의 입구가 탄생했죠. 덕분에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잠시 편하게 머물 공간이 됐습니다.

2층 프라이탁(Freitag) 매장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중요합니다. 원래 이곳엔 계단이 없었어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새로 만들었죠. 덕분에 건축적으로도 화룡점정이 됐어요. 오래된 건물에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오히려 빼면서 지역에 더 최적화한 공간을 완성한 겁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것을 신경써 활용하면 더 많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길 위의 각 요소를 연결하는 건 한 명의 건축가가 전체적인 그림을 기획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공간 내부의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각 건물을 하나로 아우르며 공간의 첫인상을 만들어주는 동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죠.

심영규 : 프라이탁이 들어온 것도 인상적입니다. 입점 브랜드를 선정할 때 특별히 고려한 게 있나요?

김지완 : 탑동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가치가 브랜드를 통해 하나의 콘셉트로 연결되길 바랐어요. 하나의 결로 파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우선 디앤디파트먼트는 중고 가구를 판매하고, 프라이탁도 버려진 타프*를 재생해 제품을 만든다는 점이 있죠. 또 프라이탁 매장엔 이미지월도 설치해 이 브랜드의 메시지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타프(Tarp) : 방수 처리가 된 방수포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에 입점한 프라이탁 매장. ⓒ아라리오 제주

세계 11곳 공간 중 제주에만 있는 'd room'

심영규 : 이제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제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라리오 로드에서 가장 인기 많은 포토 스팟 중 하나이기도 하죠. 디앤디파트먼트와의 협업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하게 됐나요?

김지완 : (2014년 처음 아라리오뮤지엄을 오픈한 이후) 그동안 실패를 경험하면서 원인을 분석한 끝에 '우리가 외지인으로서 제주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어떻게 로컬리티를 잘 나타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을 봤습니다.

도쿄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가 낸 첫 해외 지점이자, 8번째 매장인데요. 전통 공예품과 특산물, 리사이클 상품 등 한국만의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한 '롱 라이프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곳이라면 제주의 지역다움을 보여주면서, 제주의 풍경 속에 잘 녹아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입구 모습. ⓒ아라리오 제주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에는 현지 재료로 한식을 선보이는 'd식당'이 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 본체가 기존에 진행하던 지역의 옛 음식을 구현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로컬 음식에 담긴 방대한 문화나 환경까지 무리해서 재현하려기보다 제주도의 좋은 재료를 활용한 한식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그래서 이곳에선 장을 직접 담급니다.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장독대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거죠.

식물 쇼룸인 '파도식물'도 있습니다. 서울 한남동에 이어 오픈한 두 번째 공간입니다. 사실 탑동은 제주를 찾는 분들이 기대하는 자연 풍경이 있는 지역은 아니에요. 그래서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을 실내로 가지고 들어오고자 했어요. 아무래도 소금기 많은 세찬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다보니, 이곳 환경에 맞는 식물 관리를 새롭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제주도에 좋은 식물 가게가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디룸 거실 모습. ⓒ아라리오 제주

심영규 : 전 세계 11개 디앤디파트먼트 공간 중 제주에만 유일하게 '디룸(d room)'이라는 숙소가 있는 점도 독특해요.

김지완 : 탑동 원도심에는 관광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로컬 맛집이 많아요. 동문시장이나 관덕정(觀德亭)처럼 역사의 흔적이 남은 공간도 많고요. 이런 공간을 소개하기 위해 직원이 직접 추천하는 맛집과 관광지를 소개하는 지도를 만들었어요. 지도에 표시된 곳을 다 가려면 하루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에 원초적으로 접근해 숙박 공간을 기획했어요.

다만 어떤 숙박 공간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이 있었어요. 이때 '호텔 같은 호텔은 만들지 말자'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대신 '친구 집에 놀러간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그러면서 친구 집에 갔을 때 기대하게 되는 것을 떠올려봤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있는 중고 가구로 방을 꾸몄고, 객실 번호도 없앴어요. 체크인을 하면 직원이 직접 불을 켜는 것부터 창문을 여는 법까지 차근차근 알려주죠. 뿐만 아니라 고객이 예약을 하면 신발 사이즈와 실내복 사이즈를 고를 수 있습니다.

마치 집에 초대한 친구가 '자, 내 옷 입어' 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가는 거죠.

숙소에 머무는 동안 제공되는 패브릭 제품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본의 전통 수작업 제품이에요. 경험한 분들은 마치 몸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해요.

거실과 객실에 배치한 중고 가구는 판매하기도 합니다.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일종의 쇼룸 역할을 하는 거죠. 중고인 만큼 머무는 동안 직접 사용해보고 만족스러운지 평가할 수 있도록 했어요. 가구는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해 닦고, 조이고, 새로 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Only 제주' 기념품 브랜드, 뭘까?

심영규 : 디룸의 숙박은 회원제로 운영한다고요.

김지완 : 디앤디파트먼트의 철학에 동감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롱 라이프 디자인 멤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디룸에 숙박할 기회를 제공하는 건 우리 활동을 응원하는 고객에 대한 하나의 혜택이라 생각해요. 잠깐 머물다 가는 게 아니라 탑동을 느긋하게 오래 즐길 분을 위한 공간을 만든 거죠. 그래서 멤버들이 객실에만 있기 보다 거실에서 다른 숙박객과 교류할 수 있도록 공간 구성에 신경을 더 썼습니다.

다양한 숙박객이 모여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디룸의 거실. ⓒ아라리오 제주

숙박 공간과 연계된 스토어에선 롱 라이프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주요 로컬 상품의 새로운 관점을 더하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전시 중 '제주 셀렉션'이 있는데요. 제주의 생산자 중 한 분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투어를 진행한 2021년 6월 기준 '갈옷'이라는 제주 전통의복을 만드는 브랜드 '몽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주 전통 염색 방식으로 만드는 갈옷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화학 성분이 없고 땀 흡수가 좋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게 특징이에요.

이렇게 제주 셀렉션을 통해 생산자가 실제 사용하는 도구나 스케치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제주다운' 물건을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생산자를 응원하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게 저희의 목표죠.

디스토어 내부 모습. ⓒ아라리오 제주

심영규 : 탑동 프로젝트를 제주도 전역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계획도 있다고요.

김지완 : 조 나가사카 건축가가 탑동 프로젝트를 확장하기 위한 지도를 만들었어요. 제주도와 탑동의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어떤 지점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죠.

우리가 생각한 탑동의 역할은 제주도 관광의 거점, 특히 자전거를 통한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가 만든 제주 자전거 투어 기획안. ⓒ아라리오제주

그래서 엘리베이터도 자전거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만들었고, 자전거 거치대도 많이 배치했어요. 자전거 팬이 이곳에 모여 교류할 수 있기를 기대했죠.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 포터블은 '조커'이자 '이스터에그'라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 아라리오 제주가 어떤 활동을 이어 나갈 것인지 살짝 보여주는 곳이죠. 포터블은 제주도에만 존재할 겁니다. 제주도에 오시는 분들만 구매할 수 있게 이곳의 가치를 담은 기념품숍의 역할도 지향하고 있어요.

디룸에 머무는 분들께도 자동차 렌트를 하지 않고 오시기를 추천해요. 렌트카가 있으면 먼 곳까지도 가고 싶잖아요. 멀리 가지 않고도 이 동네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원도심 투어부터 골목길 사이사이까지 탑동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텍스트 스토리에 담긴 제주 탑동의 투어 이야기를 실제 영상으로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심영규 PD가 김지완 아라리오 제주 대표와의 인터뷰를 포함해 탑동과 인근 사계리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투어 유튜브 링크를 폴인 멤버들을 위해 특별히 공개했습니다. 아래 영상을 통해 2021년 6월 '뉴 로컬' 제주 탑동의 풍경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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