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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의 낡은 창고, 어떻게 크리에이터 성지가 됐을까?

이 스토리는 <뉴 로컬 : 발길 이끈 동네의 비밀>3화입니다

3줄 요약

  • 영도는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배후공업단지이면서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지역입니다. 최근 이곳을 기반으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성지가 뜨고 있습니다.
  • 플랫폼135, 끄티, 모모스커피 등 오래된 항구와 공장, 창고를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이 늘어나면서 영도만의 특색이 담긴 콘텐츠가 지역에 채워지고 있어요.
  • 삼진어묵과 같이 영도의 역사를 채운 로컬 브랜드는 낡은 삶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함께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주민과 함께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스토리북 은 심영규 건축PD가 어반플레이, 가이드라이브와 함께 하고 있는 를 폴인이 텍스트 리포트로 만든 것입니다. 

점집 100곳 넘던 영도, 어떤 변화 겪었을까

심영규 : 제주시 탑동에 이어 또 다른 '뉴 로컬'인 부산 영도를 만나볼 차례입니다. 섬의 서쪽과 동쪽으로 나눠서 투어를 진행할 텐데요. 먼저 영도 서쪽 지역을 둘러보려 합니다. 여기서 '뉴 로컬' 인사이트를 들려줄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룹 알티비피(RTBP) 얼라이언스의 김철우 대표를 소개합니다.

김철우 : 제가 이끄는 알티비피 그룹은 더 나은 도시를 위한 삶의 방식을 제안합니다. 2014년 '돌아와요 부산항에(Return to Busan Port, RTBP)'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일, 여가, 주거의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간과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영도를 전국, 그리고 세계에 알리기 위한 '영도물산 장려운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영도구 북측전경, 뒤편으로 부산대교가 보인다. ⓒ에이지미디어

심영규 : '영도'하면 영도대교를 빼놓을 수 없죠. 이곳에 어떤 역사가 담겨 있나요?

김철우 : 1900년대 초 부산항을 기반으로 산업이 발달하면서, 영도는 배후공업단지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룻배나 통통배로 그사이를 오갔지만, 물량이 늘어나면서 1934년 다리를 건설한 거죠. 영도대교는 원래 부산대교로 불렸어요. 이후 1980년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잇는 지금의 부산대교가 생기며 이름이 바뀌었고요.

또 영도대교의 특징은 국내 최초 도개교*라는 점입니다. 다리로 물길을 막으면 기존에 활동하던 선박들이 아예 통행할 수 없기에 불만을 해소하려 다리가 열리는 방식을 선택한 겁니다.

*도개교 : 다리가 한쪽 또는 양쪽으로 들어 올려져 선박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만든 다리

다리가 올라가는 모습 자체가 당시로써도 신기했기에 일찍이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겪는 동안 이곳은 '우리가 흩어지면 다시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만남의 광장이 됐어요. 그래서 영도다리 주변에는 100개 이상의 점집이 모여 있는 '점바치 마을'이 있어요. 영도다리에서 헤어진 가족이나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죠.

이후 2008년 남항대교와 2014년 부산항대교가 생기면서 이제 영도에는 총 4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완공직후의 1935년 영도대교 모습. ⓒRT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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