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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주3일 출근 활용해 40대의 일 찾았죠"

이 스토리는 <40대의 커리어 레퍼런스, '뉴 포티'>2화입니다

3줄 요약

  • 구글 마케터 출신의 곽기은님은 40대에 소셜 임팩트 섹터로 커리어를 전환하며 '역량 재정의'를 했습니다. '컨설팅', '마케팅' 같은 직무가 아니라 해왔던 일의 과정을 중심으로 나의 가능성을 살폈죠. 
  • 2, 30대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면, 40대에 접어들며 '어떻게, 얼마나 일할 것인가'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커리어 패스도 그에 맞춰 변화하게 됐고요.
  • 구글에서는 주3일, 거꾸로캠퍼스에서는 주4일 일했습니다. 개인 시간이나 가족과의 시간 대신 일의 시간을 덜어내는 실험을 시작한 겁니다.

조윤민(좌), 곽기은(우) 링커가 '뉴 포티'의 커리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송승훈

구글 '20% 프로젝트'에서 발견한 새로운 내 일

Q.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얼마 전까지 '거꾸로캠퍼스'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교육실험실21에서 COO로 일했어요. 효율적인 조직 운영 방안을 마련하고, 투자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파트너십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Q. 그간의 커리어도 궁금합니다.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 전략 컨설팅 회사를 거치면서 중장기 사업 전략 수립, 신규 사업 개발 등의 일을 했어요. 가장 오래 일했던 직장은 구글이에요. 구글에서는 앱 프로덕트 스페셜리스트로 디지털 마케팅, 퍼포먼스 마케팅 분야를 담당했습니다.

Q. 구글에서 비영리 분야로 이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구글에서의 경험은 정말 좋았어요. 일도 재미있었고, 조직문화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어요. 퇴사한 지금도 꽤 괜찮은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래 고민하면서도 선뜻 결심하지 못했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구글에서 했던 '20% 프로젝트'였어요. 업무 시간의 20%를 본업 이외에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쓸 수 있는 구글의 사내 제도인데요. 재직하는 동안 그 시간을 대부분 소셜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썼어요.

비영리 기업에 구글의 프로덕트를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고, 소셜 임팩트 챌린지 관련 사업도 했어요. 지역 여성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우먼 앳 구글' 활동도 열심히 했죠.

그렇게 꽤 오랫동안 20%의 시간을 관심 분야에 쏟았지만, 그걸로는 충족되지 않더라고요. 제겐 '가치'가 중요한 키워드인데, 그동안엔 일과 별개로 개인적 삶에서 그 가치를 찾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임팩트를 내고 있는지, 그 가치에 내가 동의할 수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졌어요.

내게 의미 있는 일을 커리어에 담고 싶어졌어요. 곧 마흔이 된다는 좋은 계기가 있기도 했죠. 

일과의 관계를 전환해보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일, 그동안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죠.

"내 역량은 단순히 직무 경험이나 업력이 아니었다"

Q. 전업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머릿속으로 그릴 때는 희망찼어요. '내가 좋아하는 걸 드디어 찾았다' 싶었죠. 하지만 과연 내가 그 분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쉽게 떠오르진 않더라고요.

퇴사를 결심한 후 소셜 섹터에 재직하는 많은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만난 멘토 한 분께서 저의 역량과 전문 분야를 좀더 폭넓게 재정의해보라고 하셨죠.

예전엔 '역량', '경쟁력'이 직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지식이나 실무 경험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디지털 마케팅, 조금 더 나아가면 마케팅이나 전략만을 제 역량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마케팅 경력이 꽤 오래됐고, 마케팅 판 안에만 있다 보니 제 경쟁력도 그 안에서만 규정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세상 밖으로 나와서 보니 제겐 다른 경쟁력이 있었어요. 저에게 조언해주신 분은 '비즈니스 통찰력(Business Acumen)'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오랜 기간 다양한 조직과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감각이 직무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역량이더라고요.

전 그간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의 프로세스, 의사결정의 원칙, 체계적으로 구축된 문화를 직접 경험했어요. 까다로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도 했죠. 좁은 범위의 직무를 뛰어넘는 역량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역량을 다시 정의하고 그걸 잘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거죠.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교육실험실21의 COO를 맡게 됐어요.

Q. 전업 후엔 어땠나요?

익숙한 게 하나도 없는 환경이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막막하거나 어렵지 않았어요. 직접적인 직무 경험이나 관련 지식, 네트워크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핵심적인 이슈를 파악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필요한 프로세스를 구축해 나갔어요.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알겠더라고요.

물론 그 과정에서 삽질도 많이 했어요. (웃음) 다시 돌아가도 그 삽질은 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었으니까요.

Q. 창업 생각은 없나요?

2, 30대 땐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았어요. 창업이라는 선택지는 제 인생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창업 생각이 좀 들어요. 예전에 제가 일을 잘하고 경쟁력을 기르려고 했던 건,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서였거든요.

그런데 이젠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이것저것 해볼 수 있겠다 싶어요. 내 비즈니스를 해보다가 다시 조직에 몸담을 수도 있고요. 일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생긴 변화인 것 같아요.

"나의 역량을 재정의하니 새로운 가능성 생겼어요." ⓒ 송승훈

"2, 30대에 '일잘러' 기술, 40대엔 '어떤 일 하고 싶은지' 정의"

Q. 20대의 나, 30대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일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변해왔나요?

2, 30대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고, 그 일을 잘하는 게 중요했어요. '내가 세상에서 최고로 잘해야지' 마인드였죠. 그리고 일을 열심히 해서 내 조직, 회사, 조금 더 확장하면 내 클라이언트가 잘되는 것까지가 성공의 범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30대 중반부터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 '얼마나 일할 것인가',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같은 고민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전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어요. 고민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어요. 사춘기처럼 끙끙 앓았죠.

Q. 지금 모습은 본인이 생각했던 40대와 얼마나 비슷한가요?

사실 40대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는 상상해보지 않았어요. 막연히 생각했던 40대의 이상적인 자아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상상한 것과는 하나도 비슷할 것 없는 지금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어요. (웃음)

Q. 40대가 되어 바라본 40대는 어떤 것 같으세요?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실험해볼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통해 나를 계속 이해하고 싶어요.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같은 거요.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가면 좋겠어요. 20대에 해야 했던 고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평생 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는 사람도 계속해서 바뀌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일단 한번 해보면 되지' 식의 호기로운 성향인 건 아니에요. 소심하게 나름의 안전망을 갖춰놓는 스타일이죠. 이런 부분에 대한 압박감이 2, 30대에는 더 심했어요. 오히려 40대가 되니 비교적 관대하고 넉넉해졌어요. '조금 망해도 대충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식으로요. 그래서 도전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Q. '자유로운 실험'이라고 해도 나름의 기준이나 우선순위가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 까다롭게 여러 조건을 붙이게 되더라고요.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도 나와 맞아야 하고, 일이 재미있어야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도 좋아야 하고, 돈도 잘 벌 수 있어야 하고 등등...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걸 다 충족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그중에서 어떤 조건을 타협할 수 있을까 미리 생각해봤어요.

그래서 가장 느슨하게 고려하기로 한 조건이 경제적인 부분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생계에 미칠 타격을 걱정해서 포기하게 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지 싶었죠. 그래서 5, 6년 전부터 15년 재정 계획을 세웠어요. 그 계획에 따르면 연봉 삭감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 예측한 시점이 내년이었어요. 조금 빨리 삭감을 하게 됐지만요. (웃음)

Q.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커리어를 쌓아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은 없나요?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커리어를 폭 좁고 매끈한 직선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와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일관된 실무 경험들을 축적해가는 거요. 하지만 커리어를 쌓는다는 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스킬 그 이상인 것 같아요. 일을 대하는 명확한 관점과 문제해결 역량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는 거죠.

'문제해결 역량이 과연 무엇인가' 최근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주어진 문제'를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 정의'부터 시작하는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40세까지 주어진 일을 잘해내는 '일잘러'로서의 스킬을 키워왔고, 이제는 그걸 바탕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해결하고 싶은지를 주체적으로 정의하려는 거예요.

20, 30대에 '나쁘지 않다' 싶은 일을 했다면, 40대엔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지금 커리어를 잘 쌓아가고 있는 거예요.
곽기은 링커는 40대를 '하고 싶은 일을 실험해볼 수 있는 시기'라 말했다. ⓒ 송승훈

워라밸: 내가 나일 수 있는 한에서 최선 다하기

Q. 기은님은 엄마이기도 하죠. 일과 육아, 그리고 육아가 아닌 나로서의 삶 사이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춰가고 있나요?

일의 시간을 덜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저는 구글에서 주3일 근무를 했어요. 거꾸로캠퍼스에서는 주4일 근무를 했고요. 구글에 있었던 '플렉스 타임'* 제도 덕분에 가능했는데요.

*플렉스 타임: 구글에서는 협의에 따라 근로자가 주 몇 시간을 일할지 결정할 수 있다. 업무 성격이나 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구글 글로벌 구성원들은 이 제도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플렉스 타임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건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조직은 그것이 가능한 환경인지만 검토한다.

아이를 낳고 1년을 쉰 후에 복귀하던 시점에 커리어에 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동안 일과의 관계에서 너무 많은 조건을 상수로 둔 채 그저 열심히만 해왔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제는 얼마나 일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겠다 싶었고, 운 좋게도 구글에 그런 제도가 있었어요. 나 자신, 가족, 일 각각의 중요도에 맞게 시간 배분을 한다면 일에는 얼마의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 저만의 답을 내려보고 싶어요. 그래서 당분간 일을 줄이는 실험을 계속해보려고요.

Q.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조율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나요?

'워라밸'에서 '라(이프)'는 결국 나 자신이 중요하단 거잖아요. 일도, 육아도 내가 나인 채로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워킹맘으로서 일하지 않는 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 쏟기 위해 내 시간을 모조리 희생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건 '내가 나인 채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닌 것 같아요.

Q. 자신을 위해 어떤 투자를 하고 있나요?

당장의 쓸모는 없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계속하려고 해요. 이런 것들이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삶의 활력을 더해주기도 하고요. 건강도 잘 챙기려고 노력하고요. 글 쓰는 것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단 꿈이 있거든요.

조윤민 링커(사진)가 곽기은 링커를 인터뷰하고 있다. 두 사람은 전 직장인 구글 동료 사이다. ⓒ 송승훈

'잡job'보다는 '커리어career' 쌓아가고 싶어요

Q. 우리는 언제까지 커리어 고민을 해야 할까요?

아마 평생 하지 않을까요. 구글 출신이니 습관적으로 '커리어'를 구글에 검색해봤는데(웃음)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여 몰두하는 일'이라고 나오더라고요. 대비되는 개념으로는 'job'이 나왔어요. '잡job'이 그때그때 가지는 직업이라면, 커리어는 생애에 걸친 일의 과정인 거죠. 커리어를 '쌓아간다'고들 하잖아요. 내가 일을 놓지 않는 이상 차곡차곡 쌓아서 나만의 큰 루트를 만들려면 고민도 평생 해야겠죠.

Q. 넥스트 스텝은 무엇인가요?

거꾸로캠퍼스에서 일하면서 파트너십, 네트워킹을 더 해보고 싶어졌어요. 흩어져 있는 리소스를 모아서 성과나 변화로 이어지기 쉽게 틀을 만드는 작업 같은 거요. 생태계를 만드는 거죠.

Q. 지금의 기은님에게 일은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한 일부. 예전에는 방점이 '중요한'에 찍혔다면 지금은 '일부'에 찍혀 있어요. 정말 잘 해내고 싶은 일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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