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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공동창업자는 왜 말없이 C레벨을 들였을까

이 스토리는 <로켓 패러독스>3화입니다

*본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는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1

마음이 복잡했다. 일단 회의를 멈췄지만 다시 박 대표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지? 싸워야 하나? 무조건 참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사님."

강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나를 나즈막히 불렀다.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걸 봐선 다른 직원 몇 명과 이야기를 하고 들어오는 길인 것 같았다.

"이사님,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핸드폰을 켜고 스케줄을 확인했다. 월요일 오전은 회의 말고는 일정이 없다. 설마 CFO가 벌써 출근한 걸까. 나는 강 팀장쪽으로 다가가며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뒤 정장을 입고 선 사람을 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금테 안경에 신경질적으로 마른 모습, 투미 백팩을 멨다. 그 남자는 강 팀장과 문의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유석원이라고 합니다. 대표님께 이야기 들으셨죠? 정도훈 이사님, 반갑습니다."

마음속 파도를 가라앉히기 전에 유석원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박 대표와 일한 시간에 대한 회고부터 CFO가 왔을 때 업무를 어떻게 분배할지 생각도 하기 전에 일이 벌어진 것.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일단, 이쪽으로 오셔서 자리에 앉으시죠."

출근 시점을 듣지도 못했는데 대뜸 회사를 방문하다니. 이 사람은 생각이 없는걸까? 박 대표에게 풀리지 않은 화가 들불이 돼 처음 보는 유석원에게 번질 것만 같았다. 일단은 냉정해야 했다.

"사실 박 대표님께서 오늘 CFO님이 오신다는 소식만 알려주셔서…이렇게 바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도훈이라고 합니다."

"네. 이사님. 오늘은 그동안 박 대표님과 이야기한 정식 출근일은 아닙니다. 다만 회사의 사정이 급한 만큼 제가 미리 회사를 알면 좋을 것 같아 빨리 왔습니다. 무례한 건 아니죠?"

공손한 말투였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상대방도 긴장한 게 분명했다. 그는 얇고 긴 눈썹을 파르르 떨며 안경을 고쳐썼다.

통보 직후에 CFO가 오다니. 박 대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생각을 할수록 감정이 고조될 것 같았다. 일단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여기 잠시 앉아 계시면 박 대표님께 여쭤보고 회의실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팀장님, 대표님께 손님 오셨다고 말씀 좀 전해주실래요?"

나는 강 팀장에게 다음 절차를 떠넘기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회의실 옆 탕비실로 가서 종이컵을 꺼내 냉수를 가득 따랐다. 연거푸 두잔을 마시니 정신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현재에 대한 판단과 앞으로 뭘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미 CFO가 들이닥친 상황을 엎으려니 너무 많은 과정이 진행되었다. 통보 직후 CFO가 온 걸 보면 박 대표가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모비딕랩스 조직도(소설 속 가상의 회사). ⓒ폴인

스타트업의 HR은 험난하다. 예전에 박 대표와 창업을 했을 때 우리는 정말 돈이 없었다. 직원을 고용할 돈이 없어 우리 자신을 갈아넣었다. 그렇게 박 대표와 나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배웠다. 그런 박 대표의 경험을 알고 있기에 이 절차를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현재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건 받아들여야 한다.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이 들었다. 업무와 조직을 나누는 게 가장 문제였다. 사실 나는 강산 팀장에게 많은 일을 맡겨왔다. 이런 일을 상상조차 한 적 없기에 업무 구분을 하지 않은 것이다. 강 팀장은 재무팀의 리더였지만, 사실상 내가 담당한 모든 일을 강 팀장과 논의했다. 당장 강 팀장 없이 일처리를 해야 한다면 정말 불편할 것이다.

생각의 꼬리가 끊기지 않았다. 정리도 되지 않았다. 월요일 오전부터 무방비로 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어리버리한 인간이었다니.

#2

탕비실을 나와 강산 팀장을 불렀다.

"강 팀장님, 내가 지금 좀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 대표님께서 지금 오신 분이 언제부터 올 거라고 말씀을 하시면…."

"이사님, 저분이 새로 오신다고요?"

강 팀장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해줄 시간이 없다. 아니 나도 잘 몰랐다.

"오늘 오전 회의 때 박 대표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빠르게 진행되는 사안이라 일단 추진하신 것 같아요. 나도 상황 파악을 해보고 강 팀장에게 정확히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놀라지는 말고. 우리 회사에 CFO의 역할을 담당하실 분이라고 해요. 우리도 예전에 회사가 더 성장한다면 전문가가 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잖아요. 아마 그 플랜이 지금 진행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회사에는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커뮤니케이션이 미숙했던 건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진행된 일입니다. 나쁜 일은 아닐거예요. 걱정 말고 대표님과 저 분 미팅이 끝나면 살짝 언제부터 오시는지 물어봐줄래요? 저는 외근을 나가야 될 것 같아서요."

강 팀장의 놀란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한 뒤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빨리 이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강 팀장은 이미 망한 스타트업에서 두 번이나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회사가 복잡한 상황에 휘말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경험이 나보다 많을 것이다.

강 팀장에게 상황 마무리를 맡겨 두고 회사 밖을 나섰다.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집에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지금 간다면 아내와 아이들도 놀랄 것이다. 어디가 아파서 왔거나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겠지. 매일 야근하며 늦게까지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낮에 집에 오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 일단은 걷기로 했다. 모두 오후 업무를 시작할 때 나는 방황을 시작했다.

5분쯤 걸었을까. 잠깐의 외도는 강 팀장의 메시지로 깨졌다.

'이사님, 새로 오시는 분은 2주 뒤 월요일부터 출근이라고 하십니다.'

메시지는 간결했다. 2주나 남았는데, 왜 갑자기 회사로 찾아온 건지…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주가 생각해보면 그리 짧지만은 않다. 반대로 내게도 시간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자. 정리를 해야 한다.


ⓒUnsplash

#3

"이사님, 괜찮으시죠?"

강 팀장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고마워요. 손님은 잘 가셨고?"

"네, 대표님과 회의를 잠시 하더니 바로 나갔습니다."

"알았어요. 강 팀장, 잠시 차 한잔 할까요?"

강 팀장과 4층 사무실로 향했다. 최근 인원이 늘어 기존 5층 사무실의 아랫층도 임대하기로 한 건 1년 전이다. 4층에는 마케팅팀과 영업팀이 있었고, 벽을 막아 만든 작은 회의실이 2개 있었다. 사무실이 커지면서 나는 4층에 갈일이 점점 없게 되었고, 6개월 만에 이 회의실에 들어온 셈이었다.

"강 팀장, 아까 내가 경황이 없었어요. 아까 상황은 나도 오전 회의에서 갑자기 알게 된 거예요. 강 팀장에게 일부러 말을 안하거나 그런건 아닌 거죠. 나와의 상의없이 결정된 일이라 당황했어요. 대표님 결정사항인 데다가 이미 투자자들과도 모두 공유했다고 해,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확한 사실은 몰라도 강 팀장은 이미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파악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내 입으로 깅 팀장에게 변명 같은 설명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그동안 동고동락했으니.

"새로운 CFO가 오면 재무 업무는 내 손을 떠나게 될 거예요. 아마 강 팀장은 그분과 일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안 보진 않겠지만요. 새로 오시는 분과 업무를 어떻게 나누면 될지 먼저 강 팀장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강 팀장이 나보다 회계 쪽은 더 잘 알잖아요. 먼저 말해야 했는데, 이렇게 놀라게 해서 다시 한번 미안합니다."

강 팀장은 종이컵 안의 물을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

"이해합니다, 이사님. 이사님 표정 보고 저도 놀라긴 했어요. 너무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제게 일부러 말을 안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회사 생활이야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일도 어떻게든 주어지면 하게 돼있고요. 꾸역꾸역 돌아가는 회사생활도 해봤기에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음……다만?"

강 팀장이 잠시 말을 아꼈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사님, 현재 그분이 오실 때까지 2주가 남아있지만, 중요한 건 업무 분리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대표님이 이사님 없이 이렇게 갑작스레 일을 추진하신 게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혹시 대표님에게 다른 의도 같은 게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 새로운 분이 오시면 그분과 할 업무 분리는 제가 하고 있을 테니 혹시 대표님께 다른 이유가 없는지 알아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강 팀장이 지적한 부분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외면하고 싶은 거였다. '지긋지긋한 사내정치' 만큼은 외면하고 싶었다. 내가 회사를 나오고 창업을 시도한 이유기도 했다.

기업에 있을 때 인사 시즌이면 각 팀의 리더와 임원 얼굴엔 항상 비장감이 돌았다. 임원의 생사의 배경에는 항상 직원이 있었다. 그들이 팀을 옮기며 다른 팀으로 데리고 가는 팀장도 있었고, 특정 임원이 나가면서 그 라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모두 나간 경우도 봤다.

개인의 성과는 어느 순간 조직에 묻히고 올라갈수록 정치를 피할 수 없었다.

몇 년간의 정치로 인한 변화를 본 이후 나는 성과와 연관되지 않는 회사 안의 일을 혐오했다. 사내 정치라고 불리는 그 어떤 것도 배척하고 싶었다.

그래서 창업한 때도 사내 정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아니, 내일 나갈 돈을 맞추는 것도 허덕이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투자받고 회사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정치라 불리우는 일련의 행위를 여전히 혐오했다. 나는 박 대표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박 대표가 하는 행동은 모두 회사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박 대표는 CFO를 영입하며 이전과 너무 다른 행동을 보였다. '이건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 팀장이 알려준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강 팀장, 내가 집에 가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볼께요. 이야기한 대로 업무 분리는 팀장님이 준비해줘요."

대답은 쿨하게 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괜한 걱정거리만 집에 안길 수 없지 않은가. 다른 곳에 함부로 물어본다면 분란이 일어날테고.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한 이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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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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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화

    [1화]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회사에 CFO가 영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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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3화

    [2화]공동창업자는 왜 말없이 C레벨을 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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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7화

    [6화]스타트업 창업가가 갖춰야 할 유일한 전문 분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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