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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우리는 왜 '스타트업 공동창업자'가 됐나

이 스토리는 <로켓 패러독스>4화입니다

*본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는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1

5년 전 박 대표와 나는 모비딕랩스를 창업했다. 첫 만남은 이전 회사에서 시작됐다. 박 대표는 영업팀 출신의 4년차 대리였고, 나는 갓 기획팀에 입사한 신입이었다. 당연히 처음엔 박 대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박 대표와 나를 연결한 건 동기 '신준우'였다. 준우와 박 대표, 그리고 나의 연은 2012년 겨울 내가 대기업 네이비오션에 입사하던 해 동기 모임에서부터 시작됐다. 신입 시절 내게 동기는 잦은 야근과 회식 사이에서 숨을 쉬게 하는 탈출구이기도 했다. 종종 번개 모임을 가지며 회포를 풀곤 했다.

모처럼 업무가 저녁 8시 전에 끝난 날, 동기들과 술 한 잔을 위한 번개를 제안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며 기다리는데 이내 영업3팀 소속 준우가 합류했다. 사실 다른 팀이라 자주 보지 못했지만, 모임을 할 때면 유난히 큰 키와 번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눈여겨본 친구였다. 준우가 앞장서 제안했다.

"오늘 한 5명 오니까, 이자카야로 가자. 내가 선배들이랑 가본 데가 있어."


ⓒUnspalsh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메뉴와 술을 시켰다. 생각보다 오기로 한 동기들이 늦었다. 약속한 저녁 8시가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사케 넉 잔을 마셨을 즈음 어색함을 깨고 준우가 물었다.

"너네 팀은 어떠냐?"

영업팀에 비하면 기획팀의 퇴근 시간은 이른 편이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딱히 힘들지는 않았는데, 이걸 자랑스레 이야기하기 미안했다.

"뭐 그냥, 그래."

적당히 얼버무리는 선에서 이 주제를 끊으려 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내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야, 나는 힘들다. 정말 지옥 같아."

준우는 안주를 먹던 젓가락으로 바닥을 쿡쿡 찌르며 한탄하듯이 이야기했다. 그간 쌓인 감정의 잔반을 털어버리려는 듯 준우는 계속 책상을 젓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런데 괜찮아. 잘해주는 선배가 한 명 있거든."

"뭐야 둘이 사귀는 거냐? 누군데."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니 남자야. 너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닌데, 정말 좋은 분이야. 아직 몇 달 되지 않았지만 팀에 적응하도록 많이 도와준 선배야.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정도 많은데 꼰대같이 굴지 않고, 내 실수도 많이 이해해주시더라고."

기대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그 선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좋은 분이면, 나도 나중에 같이 보자."

"그래, 나도 아직 따로 술을 먹거나 한 적은 없는데, 나부터 친해진 다음에 같이 보자. 내가 잘 모르는 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진 좋은 것 같아."

사내 다양한 부서와 교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건넨 나의 말을 준우는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회사를 오래 다닐 생각을 하고 많은 사람을 알아가고 싶었다.

이 대화가 끝날 즈음 야근을 마친 동기들이 자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고, 시덥잖은 농담을 건네면서 동기들이 자리에 앉는 순간 분위기는 시끄럽게 변했다.

#2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 여름이 되었다. 나는 선임이 시킨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늦은 시간까지 엑셀을 붙잡고 있었다. 저녁 9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는 준우였다.

"뭐해? 지금 어디야? 바쁘냐?"

한번에 세 가지 질문을 하는 준우의 목소리는 이미 취한 것 같았다. 동기들끼리 가끔 번개를 하긴 했지만, 6개월 전 대화 이후 준우와 내가 따로 둘만 만나는 일은 없었다. 업무상으로도 겹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둘이서 보자고 하기엔 어색했다.

"응 지금 회사야. 오늘 할 일이 좀 남아서 아직까지 있네. 힘들다 힘들어."

술 마시자고 연락 온 사람에게 푸념을 놓고 싶진 았지만, 야근을 하면 습관적으로 나오곤 했다.

"몇 시에 끝나는데? 나 회사 앞이야. 그리고 기억해? 그때 내가 말한 그 선배님 말이야. 그 선배님과 지금 둘이 마시고 있거든. 너 이야기 했더니 선배님도 보고싶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전화한 거야. 너무 늦지 않을 것 같으면 나와. 기다릴게."

준우와 선배에 대해 이야기한 뒤로는 사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몇 개월 전의 이야기임에도 준우가 기억한 것이다. 고맙기도 하고 준우의 자상함이 놀랍기도 했다.

사실 준우에게 일이 많다고 했지만 오늘의 야근은 그렇게까지 간절한 건 아니었다. 잠깐의 고민 후 가방과 출입카드를 챙기고 회사를 나왔다. 자주 생기는 기회가 아니니까.

준우가 알려준 장소는 회사 근처 막걸리집이었다. 아직 10시가 되지 않은 시간, 술집은 취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술로 가득 채워진 냉장고 옆 구석에 좌식 자리에 준우와 준우가 말한 선배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신발을 벗고 인사하며 다가가자 그 선배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손을 번쩍 들며 인사했다. 다년간 영업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내가 오기 전 두 사람은 서너병을 마신 듯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남은 파전과 빈 막걸리 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준우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획팀 정도훈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저는 박승기에요. 영업3팀. 술은 잘해요?"

그렇다. 월요일 회의에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전까지 5년간 서로 의지하며 창업동지로 함께한 박승기 대표와 나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스물여덟이 되던 해에 이 회사에 들어와 다음해 여름에 박 대표를 만났으니 그와의 만남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당시 나와 준우는 스물아홉이었고, 박 대표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박 대표는 5년차 직원답게 회사의 다양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재 회사의 조직 개편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영업팀과 각 팀의 역학관계, 심지어 우리 기획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박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한눈에 보이는 듯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팀 누구도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첫 만남에서 우리는 막걸리 세 병을 비웠다. 나는 평소 술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일찍 취했다. 박 대표와 준우는 이미 마신 술에 더해 취한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회사 이야기, 학창 시절과 연애 이야기 등을 떠들썩하게 이야기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겼지만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을 위해 그 흥을 멈춰야 했다.

"야 됐고. 내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

이미 거하게 취한 박 대표는 언제부턴가 반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너네보다 몇 년 더 회사생활해보니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내가 알게 된, 아니 내가 여기저기서 보고 알게 된 거라고 해야겠네. 모시던 임원님들 집에 가는 것도 보고. 아끼던 자기 사람들 내치는 것도 보고. 이래저래 보면서 느낀 건, 살면서 괴물이 되면 안 된다는 거야. 알겠어? 괴물이 되면 안된다고, 임마."

박 대표는 꼬부라진 혀로 갑자기 선생님이 된 것 같은 알 수 없는 결론을 지어 말했다. 괴물이 되지 말라. 무슨 의미일지 궁금했지만 캐묻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가자."

박 대표는 양복 재킷을 챙기면서 먼저 나갔다. 남은 짐을 챙기고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니 박 대표가 계산을 끝내고 에어컨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종 보자, 얘들아. 오늘 즐거웠어. 얼른 집에 들어가고 이건 택시비!"

박 대표는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 우리 주머니에 넣었다. 한사코 막았지만, 박 대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술집 앞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박 대표가 뭉툭한 손으로 넣는 만원짜리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자정을 넘겨 취객으로 가득 찬 거리, 박 대표는 우리 택시를 모두 잡아 태운 다음 집에 가겠다고 했다. 30분 정도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우리는 포기하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열고 뒷자석에 앉자 박 대표는 잘 가라면서 손을 흔들었다.

"네, 선배님!"

술에 취해 보이는 네온사인이 눈에 번져 제대로 눈을 뜨고 있기가 어려웠다. '잠시 눈을 감고 있자'며 취한 상태로 눈을 감고, 나는 시간 여행을 했다.

ⓒUnsplash

#3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직감했다. 미친듯 준비하지 않으면 지각을 할 거라는 사실을. 급히 씻고, 옷을 입었다. 지하철까지 전력질주 후 오전 8시 지하철을 겨우 잡았다. 회사까지 걸릴 시간은 50분 정도. 엘리베이터만 잘 타면 오전 9시 전 사무실 도착이 가능했다.

지각 걱정이 사라지자 전날이 떠올랐다. 박 대표가 말한 회사 이야기, 우리를 챙긴 행동, 괴물이 되지 말라고 했던 말까지. 재밌었다. 하루의 대화로 그가 앞으로 성공할 사람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확실히 재밌고 좋은 사람이었다. 준우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오늘 뭐해? 일 없으면 형이랑 술 한 잔 하자. 준우도 현장에서 퇴근하고 바로 오기로 했어."

우리는 그날 이후 가끔 셋이 모였다. 이젠 동기들끼리의 번개보다 준우와 박 대표와 만나는 일이 잦았다. 박 대표는 종종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의 배경을 해설했다. 어떻게 그렇게 정보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고급 정보를 아는 임원급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안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미새의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박 대표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박 대표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다. 박 대표가 말하는 '본인이 예전에 한 이상한 행동(스스로 이상한 행동이라고 불렀다)들'은 사실 이상하지 않았다. 이상하기보다 과감하고, 모험적인 측면이 많았다. 예를 들어 대학교를 다닐 때 갑자기 학교를 휴학하고 고구마 장사를 했다가 말아먹은 일이나, 사람들이 버리는 옷을 수거해 세탁해서 길거리서 판 일은 이상하다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경험'이었다.

또 박 대표는 영업3팀에서의 성과도 좋은 편이라 상사들의 신뢰를 받았다. 덕분에 준우의 성과도 좋아졌다. 둘은 외근도 함께 나가고, 공동으로 해야 할 일을 나눠 진행하며 팀워크를 만들었다. 우리팀 선배와 팀장도 좋은 분이었지만 기획팀 특성상 박 대표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계속 낼 수는 없었다. 대부분은 문서 작업을 꼼꼼히 진행하는 분들이라 박 대표의 추진력과 친화력을 가지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살면서 한번도 어떤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대학을 다니는 동안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리더십은 어떻게 리더십이 변하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는 정도였다. 내가 어떤 리더가 되어야할지, 그게 왜 좋은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박 대표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품게 되었다. 박 대표가 보이는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되고 싶었다. 비록 박 대표와 하는 일도 다르고, 팀도 다르지만 박 대표와 일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준우가 부럽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질투를 한 건 아니었다. 준우가 박 대표로 덕에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나는 박 대표와 같은 리더도 있고, 준우와 같은 친구도 함께 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셋의 우정을 소중히 생각했다. 회사생활을 하며 얻은 가장 큰 힘이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어설프게 망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준우를 잘못 질투하면 우리의 관계는 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박 대표와 준우와 같이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는 박 대표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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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화

    옐로모바일 떠난 최정우, 그가 '소설'로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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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화

    [1화]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회사에 CFO가 영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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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3화

    [2화]공동창업자는 왜 말없이 C레벨을 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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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화

    [3화]우리는 왜 '스타트업 공동창업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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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5화

    [4화]이유없는 변화는 없다, CEO가 숨겨둔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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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6화

    [5화]생존을 건 투자 유치, 창업가는 어떻게 돌파했나

  7. 7화

    [6화]스타트업 창업가가 갖춰야 할 유일한 전문 분야는

  8. 8화

    [7화]위기에 빠진 COO, VC 만나 털어놓은 불안은

  9. 9화

    [8화]진실의 조각 찾아나선 COO, 그가 잡은 힌트는

  10. 10화

    [9화]아이디어와 구상이 돈과 함께 탔을 때 남는 것

  11. 11화

    [10화]낙하산 CFO의 출근, 그가 먼저 요구한 것

  12. 12화

    [11화]CEO를 둘러싼 시장의 소문, 그 진실은?

  13. 13화

    [12화]낯선 이의 전화는 우연일까, 기회일까

  14. 14화

    [13화]COO가 낯선 이로부터 들은 실수, 뭐였을까

  15. 15화

    [14화]어제의 투자자가 오늘의 적이 된다면

  16. 16화

    [15화]스타트업 COO가 혼란을 겪은 뒤 한 행동

  17. 17화

    [16화]위기인 회사를 위해 내렸던 CEO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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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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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끝없는 협상, 출구 없는 전략을 짠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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