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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알못 개발자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법 : 프로그래머 강태화

이 스토리는 <회사를 움직이는 신입사원>5화입니다

또래 친구들이 6~7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저는 나이 서른에 경력을 리셋하고 새 분야에 뛰어들었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사회적 기준이 저의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발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2016년 조인스타트업을 통해 면접 본 회사에 ‘일주일 동안 개발을 가르쳐주면 빠르게 배우겠다. 그후 채용을 결정해달라’는 제안을 던졌다. 같은 해 10월 회사에 채용됐고, 입사 4개월 만에 회사의 전체 개발을 맡았다. 1년 반을 일한 2018년 8월, 경력을 리셋했다. 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사 ‘바인테크 연구소’에 신입으로 입사해 펌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개발자다.


Q. (장영화, 이하 생략) 태화님은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어요?

공부를 잘해서 칭찬 받았고, 그게 좋아서 더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었어요. 이 과정이 양성 피드백이 되어 계속 열심히 했죠. 그게 제 학창시절의 전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탐색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뭘 잘하고 뭐에 흥미가 있는지 잘 모르는 거죠.

‘나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문제에 처음 맞닥뜨린 것은, 입시를 준비하며 자기소개서를 쓸 때였어요. 내 장단점을 써야 하는데, 잘 모르겠는 거예요(웃음).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 것만 신경 쓰고 살아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었어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입니다’라고 쓸 수는 없어서 그때부터 생각해봤어요.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결과이지 특성은 아니니까요. 찾아낸 장점은 ‘책임감이 강하다’였어요. 맡은 일은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성격이 강하거든요. 사회인이 된 지금도 제가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해내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Q. 전공이 전기정보공학부잖아요. 전공을 택한 이유나 계기가 있어요?

저는 이과였는데, 이공계는 크게 이과와 공학, 그리고 사범대와 의학으로 나뉘어요. 가장 먼저 제 성격과 맞지 않는 의학과 사범대를 제하자, 남은 것은 순수과학과 공학이었죠. 요즘 물리학자들이 참 잘 나가지만(웃음), 당시 선생님들은 “순수과학은 돈 못 번다” “굶어 죽기 딱 좋다”라고 말씀하셨죠.

학생들 대부분이 그렇듯 저도 전공에 관해 가진 정보가 많지 않고,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죠. 제게 남은 선택지는 공학이었죠. 그중에서도 일반적인 분야는 기계 아니면 전기인데, 전자기학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로 전공을 택했어요. 적성도 잘 모르고, 전공에 관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전공을 고른 거죠. 지금 생각하면 무척 중요한 선택을 매우 단순하게 한 거죠(웃음).

고등학교 시절 체제에 순응하며 공부만 한 탓인지, 대학에 가자 딴짓을 시작했고, 그 딴 짓이 바로 기독교동아리 활동이었죠. 그는 선교를 위해 터키에서 1년 반을 살다 왔습니다. 그리고 터키에서 공부만 하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Q. 대학생 때도 모범생에 우등생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체제에 순응하며 공부만 한 탓인지, 대학에 가자 딴짓을 하기 시작했어요(웃음). 일단 전공이 저와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아요. 상상한 것보다 학업 난이도도 높았고요. 그래서인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기독교인이라 기독교동아리 CCC에서 활동했어요. 농담처럼 “전공은 CCC, 부전공은 전기정보공학”이란 말을 하곤 했죠. 선교를 위해 터키로 1년 반 정도를 살고 오기도 했어요.

Q. 동아리 활동이 어떤 계기가 되었겠네요. 그때 달라진 점이 있어요?

저 역시 한때 그랬지만, 습관적 혹은 문화적인 종교인이 많아요. 환경적으로 자연스레 종교를 갖거나, 어떤 계기로 종교를 믿게 되지만 습관적으로 다니는 거죠. 저도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다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죠.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그때 갖게 됐어요. 열심히 공부만 하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Q. 태화님이 내린 결론은 뭔가요? 어떻게 살아야 해요?

종교적인 대답이 될텐데, 그래서 제 이야길 듣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기독교인으로서의 결론은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건데, 이때 강조하는 기독교적 가치는 사랑, 용서 같은 것들이에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금 우리 사회, 그리고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하거든요.

종교적인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 인생에 있어선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해요. 만약 제가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흥미가 있든 없든 하던 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겠죠. 대학원에도 가고, 졸업 후에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했을 거예요. 한 마디로, 체제에 순응하던 학생이 틀을 깨기 시작한 거죠.

Q. 우리가 만난 건 태화님이 복학하고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수강했던 특강이었죠?

군대도 다녀오고 터키에서 1년 반 살다 온 후, 스물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4학년이 됐어요. 2016년 1학기였고, 제 마지막 학기였죠. 무려 2학점이나 주는 전공인데 시험이 없는 특강이 있었죠. 각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전문가들이 연사로 나오는 강의였어요. 수업을 듣고 리포트만 제출하면 되니 안 들을 이유가 없었어요(웃음). 

제가 수업을 들었을 때는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이지혜 에임(핀테크 스타트업) 대표, 신인식 데일리호텔(호텔·레스토랑 예약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대표, 그리고 장 대표님이 연사로 나왔어요. 당시 저는 졸업 후에 외국계 기업이나 공기업에 입사해서 여유 있는 삶을 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교회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직업은 생존의 수단으로 가져가고 다른 시간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죠.

Q. 그럼 특강을 듣고 생각이 바뀐 건가요?

벤처 기업은 들어봤지만 ‘스타트업’이란 말은 그때 처음 들었어요. 제가 스타트업에 끌렸던 이유는 현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기업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었어요. 작은 조직이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솔루션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했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가려는 방향이 맞는 걸까?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그게 과연 전부일까?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나도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특강 말미에 대표님이 ‘스타트업캠퍼스(현 조인스타트업)’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하셨는데, 저도 지원해서 경험해보기로 했죠.

Q. 사실 태화님은 제법 괜찮은 스타트업에서 러브콜을 받았잖아요. 글로벌 마케터를 제안한 곳도 있었는데, 본인은 개발자로 일하고 싶다며 역제안을 했어요.

스타트업에 도전한다면, 저는 개발을 하고 싶었어요. 스타트업 대부분이 어떤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해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경우가 많았고, 제 성향도 마케팅 같은 분야보다 개발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제가 컴퓨터공학이 아닌 전자공학을 전공했다는 거죠. 전자공학에서도 코딩은 배우지만 맛보기 정도니까요. 사실 전자공학 전공이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은 대학 내내 느꼈는데, 그중에서도 들을만했던 수업은 컴퓨터 관련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전공학점을 채울 때도 주로 컴퓨터와 코딩 관련 수업을 들어서 채웠어요.

어쨌든 제 계획은 이랬어요. 저를 받아주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일단 들어가서 업을 경험하자고요. 이 직업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와는 잘 맞는지 경험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인턴으로 몇 개월 일하며 일을 배우면 그다음은 개발자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당시 나인캠은 iOS 개발자를 뽑고 있었어요. 면접에서 이사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죠. 안드로이드 유저라 아이폰을 써본 적이 없고 iOS 개발을 해본 적도 없다고요. 다만 저는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꽤 가파른 편이니 일주일 동안 개발을 가르쳐달라고 제안했어요. 일주일을 테스트한 후, 업무에 투입해서 같이 일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채용해 달라고 제안한 거죠. 만약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일주일 일한 돈은 받지 않고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Q. 그러니까 개발자를 뽑고 있던 나인캠이 태화님께 면접 제안을 한 것이 결정적인 시작점이 되었네요?

사실 제가 쓴 자기소개서에 개발 전공이나 경력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죠. 회사에서도 원하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가 먼저 제안한 거죠. 실제로 회사는 제안을 받았고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개발이 시급한 일은 아니니까 빨리 배워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보기로 한 것이겠죠. 저 역시 개발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실전에 투입해 일하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으니, 서로의 이해가 맞았던 것 같아요. 이후 회사에서 기본 툴을 이용한 몇 가지 개발 미션을 던져줬어요. 저는 일주일 동안 열심히 미션을 구현했고요. 일주일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회사에 합류했죠. 최저임금 수준이었지만, 일주일 치의 임금도 계산해주셨어요.

Q. 스스로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지만, 급여가 너무 적어서 실망하진 않았어요?

저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어요. 그 돈이 제 가치를 말해주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돈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돈이 필요 없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일한 만큼의 보상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당시 저는 ‘지금 이 기회가 더 소중하다’라고 생각했어요. 애초에 돈을 먼저 생각했다면 스타트업 인턴 도전은 하지 못했겠죠.

Q. 면접에서 러닝커브가 빠르다고 자신했는데, 실제로 어땠나요?

2016년 10월 입사했는데, 다음 해 1월부터는 회사의 개발을 저 혼자 다 맡았어요. 혹시 오해하실까봐 설명하자면 일취월장, 이런 건 전혀 아니에요(웃음).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입사 초기에는 새벽 두세 시까지 코딩에만 매달렸죠. 그렇게 일하다 몸에 탈이 나서 이후에는 좀 적당히 일했지만요(웃음). 적당히 일했다고 하지만, 거의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도 코딩을 했어요. 그러니 빨리 늘 수밖에 없었죠. 

다른 이유도 있어요. 회사의 창업 멤버 분들이 원래 개발을 전공한 분들이 아니에요. 대표님은 토목과를 졸업하고 디자인을 하다가 개발까지 독학으로 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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