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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러스 가게에서 출발한 창업의 꿈

에디터

이 스토리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유니콘이 되는가 : 극사실주의 스타트업 흥망성쇠>2화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건 츄러스 때문이다. 회계사로 일하던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옐로모바일’이란 로켓에 올라탄 건 말이다. 옐로모바일은 궤도에 오르지도 못하고 떨어질 수 있는(실제로 떨어졌다) 로켓이었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 반드시 츄러스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30대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창업을 꿈꾼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가 트라우마가 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한 번 창업에 꽂히면 주변에서 아무리 실패 사례가 들려와도 무시하게 된다. 사실 실패한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다. 실패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정황이나 팩트는 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필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시장에 남는 건 왜곡된 정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성공 사례는 창업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되어버린다. 물론 성공 사례에서도 모든 요소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소로 포장된다는 점에서 실패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믿기 어렵다. 객관적이지 않고 사례의 수 역시 터무니없이 적지만, 어차피 창업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저지르는 일이다. 여기에 초심자의 자신감이 더해지면 창업하기도 전에 머릿 속의 기업은 ‘유니콘’이 되어 있게 마련이다.

내 첫 창업도 그랬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커피 교육을 받았었다. 그저 매일 습관적으로 마시던 게 커피였고, 그래서 좀 더 알고 싶었다. 교육을 받으며 회계사답게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커피를 팔아야 하는지 계산해 본 적이 있는데, 그러고 나니 “못하겠네” 싶었다. 그날 이후로 커피 수업은 완전한 취미 생활이 되었다. 그럼에도 창업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었는지, 친구들과 모이면 종종 사업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홍대 앞에 피맥가게를을 연 후배의 가게에 방문하게 됐는데, 그날 이후 내 머릿 속은 온통 그 매장에서 본 장면들로 꽉 찼다. 손님들로 붐비는 가게말이다! 도대체 그 많은 손님들이 뭘 사고 있었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후배에게 물었다. 대체 손님들이 줄을 서서 사던 ‘그것’이 뭐냐고 말이다.

“형, 츄러스 안 먹어 봤어요? 그거 츄러스에요, 츄러스.”

아, 그 에버랜드에서 파는 설탕 묻힌 딱딱한 돌막대기를 먹으려고 저렇게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말인가? 나는 직접 가게를 찾아가 문제의 츄러스를 시켜봤다. 그런데 그건 내가 아는 그 돌막대기가 아니었다. 방금 막 구운 부드러운 빵에 슈크림과 초코가 들어간 츄러스, 그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너무 잘 어울리는 무엇이었다.

친구들과 연 매장에서 팔던 츄러스. ⓒ최정우

“이거네. 이걸 해야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디저트 트렌드와 유명 가게를 검색했다. 수제 츄러스는 당시 막 뜨고 있는 디저트였다. 요식업과 디저트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지만 이건 돈이 되겠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모이면 늘 창업 얘기를 하던 친구들을 불러 츄러스에 대해 들려주고 곧바로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첫 번째 가게를 내다

시작은 부동산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부동산에서 출발한 건 아니었다. 레시피에서부터 메뉴, 장소, 가게 이름까지... 정해진 건 하나도 없었고, 모일 때마다 결정하는 것 없는 공허한 논의가 반복됐다. 이래선 안됐다. 부동산부터 둘러보기로 한 건 그래서였다.

집 말곤 거래해본 적이 없었지만 우리에겐 인터넷이 있었다. 가게를 알아볼 때 파악해야 할 것들과 입지를 고르는 방법 등을 숙지하고 현장을 돌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자금 사정에 맞는 몇 개 지역 중 최적의 장소를 추천 받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실제 가게를 냈던 숙명여대 앞이었다. ‘문제의 그 곳’은 약간 구석에 있긴 했지만 바로 앞에 지역 맛집이라 부를만한 음식점의 분점이 새로 오픈해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은 건물 주인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다 접으려고 시세보다 싸게 내놓은 가게였다. 주인이 부른 권리금은 7000만원. 구석이긴 하지만 학교 앞이고, 앞에 위치한 식당 덕에 유동인구가 적지 않아 마음엔 들었다. 그러나 7000만원을 낼 수도 없었고, 내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 우리의 예산은 1억원이었는데, 70%를 권리금에 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질렀다.

“4000만원에 계약하시죠. 대신 이틀 뒤에 입금할게요.”

그냥 막 지른 건 아니다. 마침 직전에 성사될 뻔한 계약이 계약금 입금 시점에 깨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주인은 애가 닳아 있었고 말이다. 계약 논의가 오가는 사이 주인은 자신의 패를 우리에게 보여준 셈이다. 원하는 권리금을 다 받기 위해 금액 전체를 날릴 수도 있는 불확실성을 안는 대신 권리금의 일부만이라도 확정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이번 기회를 지난번처럼 놓치면 4000만원마저 건질 수 없었다. 그렇다면 4000만원이라도 수익을 확정하고, 두 다리 뻗고 자는 게 낫지 않을까?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주인은 (기대에 미치진 못하지만)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수익을 확정했다. 우리는 3000만원을 절약했다.

부동산을 계약하자 탄력이 붙었다. 더이상 회의만 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친구들에게 필요한 자본금의 규모를 알려주고 각자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묻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1억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계약 이틀 후 권리금 4000만원과 함께 보증금을 입금했고, 가게를 얻었다. 절약한 돈은 가게를 여는 데 알토란 같이 쓰였다.

보통 친구와 동업하면 한 명을 세워 투자금을 몰아주고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게 한다. 세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친구를 잃을 수 있는 구조였다. 성공했을 때는 서로 자기가 더 많이 기여했다며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려고 싸우고, 실패하면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호소하며 손실을 적게 안으려고 싸울 수밖에 없다. 어떤 방향이든 친구는 잃고, 여차하면 돈까지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로 사업을 시작했다.

레시피도 문제였다. 스페인에서 츄러스 기계를 수입하면서 받은 레시피 한 장으로 ‘우리만의’ 츄러스를 만들어야만 했다. 매일 퇴근 이후 모여 밀가루 반죽의 비율을 실험했다. 세상 맛있던 밀가루가 그렇게 텁텁해 보일 수가 없었다.

레시피를 완성하고 나니 브랜드가 문제였다. 젊은 고객에게 어필할 신선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밀가루 반죽 비율만큼이나 많은 문장들이 만들어졌고, 지워졌다. 마지막에 선택받은 이름은 ‘츄로씨 별을 따다’였다.

오픈 직전, 나는 주어진 오픈 시간과 테이블 수, 메뉴의 가격, 대략적인 손님의 성비와 나이대 등을 예상해 매출과 비용을 추정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머잖아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었고, 수익 배분을 넘어 최초 투자 금액까지 회수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제 정말 오픈만 남았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대망의 오픈날,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까지 손님이 없을 줄이야! 대규모 마케팅이나 오픈 행사를 한 건 아니기에 문전성시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놀랍도록 손님이 없었다. 비록 첫 날이었지만 매장의 빈 좌석을 볼 때마다 가슴이 타 들어갔다. 스타트업계에선 돈을 쓰는 걸 ‘버닝(burning)’이라고 하는데, 돈을 태운다는 의미다. 겪어보니 타는 건 돈만이 아니었다. 마음도 같이 타 들어갔다.

오픈 전엔 분명 수익을 계산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각종 고정비를 뽑으려면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다시 계산했다. 과연 우리는 어느 정도 손실을 감내할 수 있고, 또 몇 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또 벌어졌다. 우리가 걱정하는 와중에도 매장을 찾는 손님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모두 생업이 있었고, 때문에 츄러스에 목숨을 걸지는 않은 탓에 속은 타들어갔지만 딱히 새롭게 뭔가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손님의 수는 뚜렷한 증가세였다. 왜였을까? 이게 바로 속칭 ‘오픈빨’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오픈빨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바이럴이 이루어지면서 유기적으로 손님이 늘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매장 앞엔 대기 줄이 똬리를 틀었다.

지금에야 고백하자면 당시 매장엔 대기 벨도 없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손님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거다. 급하게 대기 벨을 주문하고, 장시간 대기도 마다않는 고마운 손님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대책을 세웠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숙대 앞에 위치했던 '츄로씨, 별을 따다' 매장의 모습. ⓒ최정우

‘이렇게 장사가 잘 되다니, 회사를 관두고 가게에 올인해야 하는 거 아냐?’

온갖 잡념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걱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픈빨은 길어야 한 달이다. 오픈빨이 사라지면 당연히 매출은 줄어든다. 그때 남는 게 바로 진성 고객이다. 이들과 더불어 매출을 견인할 신규고객이 꾸준히 유입된다면 가파르진 않더라도 매출은 약간의 상승곡선을 그리며 안정화된다. 물론 이러한 오픈빨조차 경험하지 못했거나 최초의 폭락 이후 반등하지 못한다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사실 여기서 문을 닫는 가게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뽕 맞은 듯한 행복감을 줬던 바로 그 매출 상승이 지극히 평범한 사업의 경로이자 생애주기였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지식이 전무했던 당시의 나는 일주일 사이 지옥과 천당, 다시 지옥을 오가며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었다.

이건 분명 회사에서 느끼는 것과 달랐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큰 프로젝트를 성사시킨다고 해도 이만큼 속이 타들어가고 이만큼나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지독한 불안감을 동반하긴 했지만 성취감은 놀랍도록 강렬했다. 매출에 따라 하루 종일 내 감정은 널을 뛰었다. 아침엔 가슴이 타들어가는 절망감에 휩싸였고 오후가 되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불안감을 극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그때 널을 뛰던 그 감정은 앞으로 내가 겪게될 엄청난 감정의 촉소판이었다.

아무튼 우리 역시 초기 오픈빨 이후 매출이 하락했고, 다시 소규모 상승을 겪었다. 그리고 별다른 상승세 없이 매출이 유지되는 시기가 왔다. 아쉽게도 그때의 매출은 애당초 우리가 예상했던 규모가 아니었고, 우리는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츄로씨는 또다시 위기를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소비재 부문에서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뭘까? 바로 카테고리 확장이다. 트래픽이 고정된 상태에서 고객이 접할 수 있는 상품들을 많이 확장시키면 그만큼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게 커피 가게에서 빵 팔고, 빵 가게에서 커피 파는 이유다. 그러나 타 매장과 차별화할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가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건 여러 종류의 싸구려 제품을 잔뜩 늘어놓는 것이나 다름 없다. 고객은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설명하진 못하지만, 이 제품이 기꺼이 내 돈을 투자해도 될지에 대한 판단은 귀신같이 분명하게 해낸다.

우리가 카테고리 확장을 하지 않은 건 그래서였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 어떤 메뉴도 애초의 츄러스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래서 카테고리 확장 대신 시그니처 메뉴를 조합한 프로모션 메뉴를 만들었고, 크진 않지만 매출을 끌어올렸다.

우리가 생각한 또다른 방법은 위탁 판매였다. 정해진 매장에서 늘릴 수 있는 트래픽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트래픽 자체를 늘리자면 매장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식품은 지역 확장이 쉽지 않다. 위생 그리고 안전과 직결된 것이다 보니 규제가 많았고 유통을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도 적지 않았다. 결국 이 방법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시도한 건 소셜커머스였다. 그 당시는 소셜커머스가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여러 플랫폼이 다양한 상품을 경쟁적으로 소싱하고 있었다. 사실 소셜커머스에 상품을 올릴 때에는 뭐라도 하자는 심정이었지,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반응은 엄청났다. 가격을 낮춰 올리긴 했지만, 츄러스 하나 먹자고 한 시간 넘는 거리에서 고객이 찾아오기도 했다. 소셜커머스의 위력은 엄청났다. 향후 미친듯이 성장할 소셜커머스의 서막을 경험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불행히도 가격을 너무 낮게 설정한 탓에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

츄러스가 남긴 것들

우리의 ‘츄로씨’는 그렇게 10개월 가까이를 버텼지만, 버텨냈을 뿐 날아오르진 못했다. 별이 되어야 하는데 구름까지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때란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유지하며 조금씩 돈을 잃기보다 한 번에 일정 금액을 회수하는 게 나았다. 답은 하나, 매각이었다.

사실 나는 회계사로 일하며 다소 감상적인 이유로 회사를 매각하는 데 주저하는 고객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나 역시 그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구슬땀을 흘려가며 만들었던 우리의 ‘츄로씨’를 매각한다니... 매장 앞 기둥의 색깔을 신중하고 고르고 온 몸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칠했던 기억, 그릇을 사겠다고 중고매장을 휘젓고 다니던 기억, ‘츄로씨 별이 되다’가 만들어졌던 기억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내가 무척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모든 걸 숫자로만 판단하기로 했다. 우리의 돈은 타들어가고 있었고 돌파구 또한 안보이는 상황에서 추억에 빠지는 것은 위험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손익이다. 근 1년 간의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 보며,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매출과 이익 그리고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점검해봤다. 결론은 자명했다. 매각 외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주저하는 친구들을 설득했다.

결론이 난 이상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부동산 중개업자와 주변 상인들을 통하여 매도자를 찾고,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개월이었다. 그 과정에서 매각 금액을 높이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몇 명의 잠재적 매수자와 협상을 진행한 후 그 중 한 곳과 최종 협상을 벌였다. 덕분에 우리가 지급했던 권리금 4000만원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권리금을 받을 수 있었고, 팔 수 있는 모든 걸 매각해 손실 규모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남은 돈은 지분에 따라 배분했다.

러스를 통해 나는 사업의 사이클을 경험했다. 불안감과 행복감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기복을 겪었고, 작지만 강렬한 성취감도 느꼈다. 그건 엑셀 상의 숫자를 볼 때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누구보다 냉정하다고 믿었던 나의 이성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불안감은 성취감만큼이나 강한 인상과 흔적을 남겼다.

숫자만 봤을 때 내 첫 사업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여정 가운데 내가 마주한 현실은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만큼이나 성취감이 주는 기쁨 또한 강렬했다. 이 불확실한 성취감이 언젠가 나를 또다른 여정으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때 이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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