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book / 1화. 사이드 허슬 프로젝트, 찬란한 삽질의 시작

1화. 사이드 허슬 프로젝트, 찬란한 삽질의 시작

1화. 사이드 허슬 프로젝트, 찬란한 삽질의 시작

Story Book세탁소옆집 : 퇴근하고 맥주슈퍼를 열었습니다

9분

운명의 파트너

찬란한 삽질의 역사를 돌아보기 전에 우리 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30대 직장인이다. 둘 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며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직장은 다르지만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하는 일도 비슷해 마주칠 일이 잦다.

우리는 2015년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를 알게 됐다. 당시 업무를 방해하는 공동의 적(정체는 비밀)에 맞서 싸우며 동료애 비슷한 것을 키웠다.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에는 어느덧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퇴근 뒤 수없이 기울인 술잔 덕인 것 같다.

친해지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쌀국수 위에 올라가는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항공권 외에 아무런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니!!). 급속도로 친해진 두 직장인은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술을 마시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물론 지우고 싶은 기억도 많다...술...너란 녀석...). 그러니까 우리 사이는 친구보다 친하지만 친구는 아닌, ‘님’이라는 호칭으로 엮인 ‘영혼의 파트너’라고나 할까.

2017년 8월, 후쿠오카. ©세탁소옆집

생산적인 음주를 고민하다

누군가 우리에게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음주라 말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술을 맛보거나 독특한 술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작은 술집에서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잔을 부딪치며 수다를 떠는 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며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왕 마시는 술, 생산적으로 마실 수는 없을까?”

여기서 말하는 생산적인 음주란 술도 마시고 돈도 버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물음은 ‘우리가 술집을 차린다면’이라는 즐거운 상상으로 이어졌다. 술을 마셔서일까. 이야기는 빠르게 진전되었고, 금세 결론에 도달했다.

“딱 1년만 사이드 허슬(Side Hustle)*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

*사이드 허슬(Side Hustle)은 실리콘밸리의 직장인들이 회사 밖에서 별도의 프로젝트나 사업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발전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돈벌이의 수단인 부업(Side Job)과는 다르다.

우리는 술집 창업을 주제로 1년 동안 사이드 허슬에 도전하기로 했다. 2017년 8월에 있었던 일이다.

부티크 맥주 편집샵을 꿈꾸는 맥주 슈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같은 아이템도 운영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비즈니스가 된다. 성공한 스타트업 중에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비즈니스를 효과적으로 운영해 성과를 낸 경우가 많다(쿠팡은 기존 커머스 모델에 로켓배송이라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더해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가 됐다). 우리도 ‘술’이라는 흔한 아이템을 고른 대신,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비즈니스모델을 찾기로 했다.

술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맥주였다. 우리는 좋아하는 맥주를 해외에서 직접 주문해 마실 정도로 맥주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신맛이 나는 사워비어(Sour Beer)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다.

2015년 가을, 가로수길의 미켈러(Mikkeller)* 바에서 처음 사워비어를 마신 날을 잊을 수 없다. 혀에 닿는 순간 코가 찌릿할 정도로 알싸하면서도 시큼털털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평소 홍초와 감식초를 즐겨 마시던 우리는 사워비어의 신맛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잔을 비웠다.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미켈러 바에 들러 사워비어를 마신 것 같다.

*미켈러(Mikkeller) : 덴마크의 수제 맥주 브랜드. 자체 생산 시설을 갖추지 않고 다른 브루어리에 위탁해 맥주를 만들어 집시 브루어리로 불린다. 2006년 설립 이후 1000종이 넘는 맥주를 만들었으며, 전 세계에 7개의 바(Bar)를 운영한다. 그중 하나가 가로수길에 있다.
가로수길에 있는 미켈러 서울 ©folin

매일 술집에 드나들다 보니 늘어나는 엥겔지수를 감당하지 못해 사워비어를 직접 공수해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해외 직구를 하는 과정에서 사워비어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저것 주문해 마시면서 맥주에 관한 지식이 쌓였다. 술집을 열게 되면 가장 좋아하고, 잘 아는 술을 팔아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사워비어를 팔기로 했다.

사워비어는 우리나라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술이다. 일반 주점이나 슈퍼마켓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기회로 여겼다. 사워비어가 유명해지면 손님들이 제 발로 우리 가게를 찾아올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워비어를 팔기로 한 것은 꽤 현명한 판단이었다(실제로 폴인의 담당 에디터는 사워비어에 중독돼 매주 세옆을 방문한다ㅎㅎ).

맥주 시장의 활성화도 창업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한국의 수제 맥주 시장은 최근 3년간 해마다 100% 이상 성장했다. 더부스∙맥파이 등 초창기 수제 맥주 시장을 개척한 브루어리의 성공 이후 제주맥주∙안동맥주∙버드나무브루어리 등 개성 뚜렷한 신생 사업자들이 나타났다. 브루어리 외에도 맥주 디스펜서를 이용한 독특한 콘셉트의 탭 하우스가 생기는 등 맥주 산업의 인프라는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또 ‘혼맥 문화’가 유행하면서 맥주 자체의 인기도 늘었다. 다양한 맥주가 소비되면서 소비자의 입맛도 까다로워졌다. 우리는 꾸준한 음주로 시장 상황을 체감하고 있었기에 맥주 사업에 확신을 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사이드 허슬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퇴근 후 운영하는 가게이므로 공(+돈)은 적게 들이면서 알차게 매출을 올려야 했다. 수제 맥주를 파는 브루어리는 공장을 세워야 하므로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평범한 직장인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다ㅠ). 매장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비즈니스 모델은 취객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라 쓰고 난동이라 읽는다) 때문에 두려움이 앞섰다.

고민 끝에 경리단길에서 답을 찾았다. 맥주슈퍼 콘셉트로 유명한 우리슈퍼가 우리가 찾는 비즈니스 모델에 가까워 보였다. 음료 냉장고와 진열대에 독특한 수입 맥주를 진열해놓은 우리슈퍼는 구매한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매장 한쪽에 간이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우리가 마시기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슈퍼의 비즈니스 모델을 발전시키면 맥주 비즈니스의 단점(취객의 난동)을 최소화하면서 장점(맛있는 맥주 소개하기, 마시기)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쁜 사람은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가져가고, 심심한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주인장과 친목을 쌓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다.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빈 병, 늘어나는 매출...

“오, 이거 괜찮은데?”

우리는 맥주 슈퍼(멋지게 말해 부티크 맥주 편집샵)를 비즈니스 모델로 정하고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사이드 허슬 프로젝트(a.k.a.삽질) 본격적으로 스타트!

2017년 10월,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최고삽질책임자(조윤민)의 집을 워 룸(War Room)*으로 정하고 고밀도 합숙에 들어갔다. 합숙 기간에는 시장조사와 함께 맥주의 역사와 맛을 공부했다. 대형마트의 진열대에 놓인 맥주를 모두 사들여 맛을 보기도 하고, 서점에서 책을 주문해 맥주 브랜드의 역사와 스토리, 특징 등을 공부하기도 했다(서로 시험을 볼 정도로 진지했다).

*워 룸(War Room) : 전쟁 시 군 통수권자와 핵심참모들이 모여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을 협의하는 곳. 기업의 전략회의실이나 위기상황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탁소옆집의 경우 워 룸에서 창업을 위한 각종 전략과 삽질들을 기획했다.

여러 맥주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맛 표현을 연구하기도 했다. 연휴가 끝난 뒤에는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입점 장소를 알아보기도 하고, 인테리어에 매진하는 등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을 해냈다. 그리고 10월 말, 세탁소옆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시작한 우리의 사이드 허슬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꿈에 그리던 스타트업을 이룰 수 있을까. 음주가 취미인 직장인들의 약간은 허술한 사이드 허슬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

2017년 10월, 세탁소옆집 오픈을 준비하며. ©세탁소옆집

세탁소옆집의 초간단 사업계획서

  1. 아이템 : 우리가 사랑하는 맥주! 새롭고 맛있는 맥주(특히 사워비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아주 많이 팔고 싶다! 세상에는 1만 개가 넘는 브루어리가 있다구!!!
  2. 시장현황 : 맥주 시장은 매년 고속 성장 중! 맥주를 향한 대중의 수요가 늘어나고 입맛도 고급화되는 추세,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에일과 라거에서 벗어나 독특한 맛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주자!
  3. 비즈니스 모델 : 작은 테이블과 맥주 진열대를 갖춘 ‘맥주 슈퍼마켓’. 우리가 추천하는 맥주를 팔면서 취객의 난동을 예방할 수 있어 효과적일 듯!
  4. 결론 : 우리의 취향을 듬뿍 담은 부티크 맥주 편집샵(a.k.a 맥주 슈퍼)을 만들자!

부록. 최고삽질책임자(C삽O)와 최고잡일책임자(C잡O)의 기원

세탁소옆집의 주인장들은 각자 최고삽질책임자(조윤민)와 최고잡일책임자(김경민)라는 직책을 보유하고 있다. 마케팅을 총괄하는 조윤민은 홍보 포스터나 단체 티셔츠 제작 등 수시로 일을 벌이며 삽질을 반복하고, 오퍼레이션을 담당하는 김경민은 사업자 등록이나 매장 시설 점검 등 가게 운영에 필요한 잡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면 삽질 아닌 일이 없고 잡일 아닌 일도 없어 구분이 무의미해 보이지만, 명함 제작 시 공동대표라는 직함은 심심해 보여 굳이 만들었다는 후문.

  • 세탁소옆집 : 퇴근하고 맥주슈퍼를 열었습니다

    조윤민 외 1명

    매주 금

스토리북 구매하기
Top
팝업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