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book / 이태영 : 법으로 불평등을 부수다 (1)

이태영 : 법으로 불평등을 부수다 (1)

변호사 사무실을 열자마자 마치 4000여년이나 같은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버림받고 서러움 많은 여자들이 줄을 지어 몰려왔다. 사무실 앞 골목은 온종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이 여인들의 고통과 눈물과 한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어떤 부름을 들었다. 그래서 일그러지고 상처가 나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여인들을 당당하고 온전하게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함께 울고 위로하고 변론하였다.
_이태영 변호사의 여러 글을 묶은 책 <정의의 변호사 되라 하셨네> 中 

이태영(1914~1998) : 법으로 불평등을 부수다

오늘은 한국의 여성 최초 변호사인 이태영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이태영 변호사는 법과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평등은 구호일 뿐이라고 믿었던 분이죠. 가정법률상담소를 열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법과 제도의 개선을 위해 삶을 바쳤던 인물인데요. 누구도 차별 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투쟁했던 그의 정신을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1. 왜 올케 언니는 가정의 '노예'가 됐을까

이태영은 1914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안북도 운산

평안도, 함경도는 조선시대까지 굉장히 차별 받는, 비주류 지역이었어요. 서울과 멀기도 하고, 국경지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지역에 기독교가 제일 먼저 들어왔거든요. 기독교가 보편적인 해방 사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 지역 사람들은 교육과 평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이태영도 기독교 집안이었는데요. “당연히 딸도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이태영은 1931년 평양정의여고보를 졸업합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그는 모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는데, 공부를 잘하다 보니 유학을 가고 싶었죠. 그래서 이화여전 가사과에 들어가는데요. 왜 가사과에 지망했을까요?

이태영은 친 오빠와 굉장히 가까웠는데요. 나혜석과 나경석의 관계도 생각나시죠. 오빠의 부인인 올케를 보며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올케는 똑똑하고 집안일도 다 하는데, 언제나 집안에서 중요한 위치가 아니었으니까요. 이태영은 자전적 교유록인 <나의 만남, 나의 인생>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첫째 올케 언니를 떠올리면서 기혼 여성들이 가정에서 마치 ‘노예’와 같은 상황이라는 점을 목도하고, 가정학을 공부함으로써 어떻게든 그러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여자의 세계는 가정인데,
  • 여자, 최초가 되다

    장영은

    매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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