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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산돌 (1): 한글은 본래 세로로 쓰기 위한 문자였다

10. 산돌 (1): 한글은 본래 세로로 쓰기 위한 문자였다

Story Book<브랜드 소셜 살롱> Be my B의 BRAND WEEKLY

17분

Editor's Comment

사람들이 브랜드를 처음 들었을 때 떠올리는 건 어떤 이미지도, 인물도, 제품도 아닌 ‘로고'입니다. 구글, 애플, 삼성, LG, 현대카드를 떠올려 보세요. 브랜드 이미지는 타이포 브랜딩이 결정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타이포 이야기를 할 때 산돌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지난 2월 23일, 산돌이 비마이비에 초대됐습니다. 타이포 브랜딩에 관한 산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일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야기가 오갔어요.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한글 서체의 특수성을 연구하고,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며 얻은 산돌만의 노하우로 풍성하게 채워졌습니다.

산돌의 권경석 이사는 크게 3가지 큰 주제(볼드, 레귤러, 라이트)로 세션을 이어갔습니다. 볼드엔 산돌이 지나온 담대한 도전을, 레귤러엔 산돌만의 남다른 철학을, 라이트엔 앞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서체의 미래를 담아냈죠.  

어쩌면 한 편의 폰트 개론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산돌이라는 브랜드가 스스로의 철학을 정립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린 브랜드란 이처럼 브랜드의 철학에 집착하는 태도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체 이야기, 조금은 낯설지라도 여러분께 꼭 전하고 싶었어요.  오직 산돌이기에 할 수 있는, 산돌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니까요.




디자이너라면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사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다른 점이 뭔가?”라는 질문이죠.
_권경석 산돌 이사


 




 


1996년 산돌에 입사해 산돌 수석디자이너를 거쳐 현재 디자인 컨설턴트를 맡고 있다. 산돌이 10인 규모의 작은 회사일 때부터 회사의 성장을 지켜봤다. 현대카드, 삼성, LG 등 국내 굵직한 기업의 브랜드 전용 한글 서체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네이버 나눔고딕체, 애플 디바이스 한글 디폴트 서체 등을 게발/기획 하기도 했다.


 

Bold; 한글 디자인의 꿈에 부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산돌 수석 디자이너를 거쳐 디자인 컨설턴트을 맡고 있는 권경석입니다. 비마이비의 겨울 시즌 큰 주제가 린 브랜드(Lean Brand)라죠? 린 브랜드가 작게 시작하고, 디테일을 챙기고,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를 의미한다면 제가 걸어온 길과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1996년에 산돌에 입사했는데, 입사하고 보니 회사 인원이 딱 10명일 만큼 규모가 작았거든요. (웃음) 다행히 운은 좋았어요. 제가 합류한 뒤부터 회사가 성장했으니까요. 지금은 50명 정도 되는 회사가 됐습니다.

처음 산돌에 입사할 때 대표님과 약속을 했어요. 10년 내에 볼드 서체를 만들어보겠다고요. 볼드에 굵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용감하고 대담하다는 뜻도 담겨 있어서요. 당찬 포부를 갖고 합류했죠. 이후 퍼즐체, 크레용체, 붐, 산돌광수체 등 산돌이라는 회사를 알린 대표적인 서체들을 기획하고 디자인했습니다. 그러다 IMF를 맞았어요. (웃음) 많은 회사들이 인력 감축을 했을 때, 저희는 인력이 아니라 공간을 감축했습니다. 1, 2층 쓰던 공간을 한 층만 쓰며 어떻게든 버텼던 것 같아요. 

그래도 참 다행인 건, 이때 진행했던 작업들이 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거예요. 조선일보에서 서체 의뢰를 받아 제작한 적이 있는데, 잘한다고 소문이 났나 봐요. 중앙일보에서도 연락이 오고 또 다른 곳에서도 관심을 가졌어요. 덕분에 IMF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맑은 고딕은 한국이 수출한 최초의 서체인데요,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직접 계약했습니다. 이후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현대 카드의 타이포 브랜딩을 진행했어요. 지금까지도 현대카드처럼 타이포 브랜딩을 해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들이 있을 만큼 좋은 성과를 냈죠. 

 

산돌의 역사를 함께 만들기까지


최근에는 엘지그룹 서체를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LG. 이 두 글자 바꾸기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웃음) 큰 기업에서 로고를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로고 하나 바꾸면 간판 바꿔야지, 인쇄물 바꿔야지 생각보다 큰돈이 드니까요. 엘지의 이전 로고 중에서 ‘G’를 한 번 보세요. 끝에 다리처럼 끝부분이 볼록 튀어나와 있죠? 이걸 잘라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왼쪽은 바뀌기 전 LG의 로고, 오른쪽은 바뀐 후 LG의 로고. [사진 LG]

삼성의 서체를 바꾸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걸렸냐면, 이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웃음) 함께 했던 동료들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지금은 아예 다른 일을 하고 있네요. 그때 자문위원이었던 코미야마 선생님이 이런 무서운 말을 해주셨어요.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한 사람은 꼭 죽어나간다”고요. 그래도 어떻게든 버텼더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진행한 프로젝트도 많은 편입니다. 어떤 서체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항상 나오는 나눔고딕도 만들었고요. 또 제주도 전역의 교통 표지판에 쓰인 서체도 산돌에서 만들었어요. 산돌네오 시리즈가 가장 유명한 스테디셀러인데요, 만들 땐 정말 힘들었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니 하나의 템플릿 역할을 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산돌네오 시리즈를 만든 12년간 제 손을 거친 서체가 한 90만자 되는 거 같아요. 25명의 디자이너가 저와 함께했고요. 

 

한글 UX 중심적 서체를 만들다


산돌의 대표 서체인 산돌네오 시리즈를 좀 더 설명해드릴게요. 산돌네오 시리즈가 이전 서체들과 다른 이유 두 가지는 사용자 중심, 한글 중심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폰트는 뚝딱 만들 수 없어요. 글자 하나하나를 전부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 년은 걸리는 긴 과정이죠. 그래서 사용자들을 조사하고 분석해서 폰트를 만들고 나면 트렌드가 바뀌어버립니다. 더구나 폰트 만드는 회사가 너무 적다 보니 딱히 대안도 없어요. 폰트 제작사에서 만들면 쓸 수밖에 없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산돌네오 시리즈를 만들면서 제일 중요하게 고려한 건 ‘사용자 중심’입니다. 자문단을 꾸릴 때도 사용자들로 구성하고, 평가단도 실제 폰트를 사용할 분들을 모셨어요. 서체를 쓰면서 불편했던 점, 애로 사항, 아이디어들을 듣고 반영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폰트를 만들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합니다. 다른 회사의 서체를 의뢰받고, 커스텀 폰트도 만들어서 얻은 수익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거예요.

두 번째는 한글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전까지는 한글 서체를 디자인하면서도 한글이 중심이 아니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글은 직접 다 만들어도 영어나 특수 기호 같은 건 다른 서체에서 가져왔다는 거예요. 일종의 짜깁기죠. 혹시 그런 적 없으신가요? 한글 폰트로 영어나 숫자, 특수 기호들을 쓰면 전혀 다른 폰트처럼 보였던 경험이요. 저희는 한글 디자인에 맞게 한자·영문·숫자 등을 전부 새롭게 맞추었어요. 이런 부분이 고객분들께도 잘 전달된 것 같아요.

 

권경석 이사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는 비마이비의 멤버들. [사진 비마이비]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게


영문 폰트는 저희가 전부 다 만들진 않았어요. 우리가 영문 폰트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 영미권 회사에서 만드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영미권 회사의 200여 서체를 조사해서 후보 3가지 정도를 선정했는데, 막상 한글 폰트와 함께 써보니 잘 안 맞더라고요. 한글과 영문은 정말 다른 서체라서요.

예를 들어 숫자 ‘4’를 쓰더라도 한글 폰트에서 4의 공간은 넓지만 영문 폰트에서 4는 가운데 공간이 정말 좁아요. 신기하죠? (웃음) 이런 부분들까지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신경을 많이 썼어요. 서체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와 직접 연락하고 수정해서 겨우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체가 공개되기도 전에,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애플에서 연락이 왔어요. 산돌네오 시리즈 중 ‘산돌고딕네오1’을 쓰고 싶다고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쓰는 애플의 모든 장비, 컴퓨터, 노트북, 심지어 OS까지 다 산돌고딕 네오를 쓰고 있어요. 이름을 좀 바꿔서 Apple SD Gothic Neo체라고 부르죠.

본 고딕체도 인기가 많은데, 구글에서 제작 요청을 받았지만 어도비에서 총괄 제작을 맡았습니다. 산돌은 어도비와 파트너십을 맺고 함께 만들었는데, 어도비의 방식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이때도 산돌네오 시리즈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 번 어렵게 만들어 놓으니 (웃음) 다른 디자인에도 금방 적용할 수 있었거든요. 다행히 이렇게 만들어진 서체들이 다 인기가 좋네요. 

 

Regular ; 분명한 철학을 찾아가다


디자이너라면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사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다른 점이 뭔가?”하는 거죠. 저도 그런 고민에 빠진 적이 있어요. 산돌만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우리는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글 글꼴 1세대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최정호 선생님의 명조체를 모방해봤어요. 

 

위) 최정호 선생의 서체, 아래) 모방하여 만든 디지털 서체, [자료 산돌]

위에 보이시겠지만, 똑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써보면 사용성이 떨어집니다. 모양은 똑같은데 사용성이 떨어진다니 이상하죠? 아날로그에서 나타나는 공간설계가 디지털에서 살아나지 않아요. 도대체 디지털 한글 폰트는 왜 이렇게 사용성이 떨어질까, 한글 폰트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고민하다 제가 내린 답은 4가지입니다.

 

1. 한글 창제 원리와 맞지 않는 사용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한글 폰트가 한글 창제 원리와 다르게 쓰인다는 겁니다. 훈민정음이라는 말을 풀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예요. 한글의 타깃이 '백성'임을 이름에서부터 밝히고 있죠. 또 서문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편하게 쓰고자 함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요즘 이야기로 하면 유저 경험을 설계한 거예요. (웃음) 이렇게 접근하면 한글은 정말 멋진 디자인물입니다. 

더 재밌는 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자'는 한글의 콘셉트입니다. 이 부분을 주목해주세요. 세상의 모든 '말'이 아니라 '소리'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세종이 기생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 노랫소리를 어떻게 한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고 해요. 시냇물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리 멋지게 만들어도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세종도 그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한글 창제 과정을 담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만들면 뭐하나, 백성들이 써야지."라는 대사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한자가 세상의 중심이었잖아요. 한자를 배워야 출세할 수 있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누가 한글을 쓰겠습니까.

이때 세종이 생각해낸 게 ‘한글의 당위성’입니다. 사람들이 한글을 쓸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만드는 거예요. 한자는 나의 조상, 조상의 조상이 쓴 언어입니다. 한자를 쓰는 이유랄 게 딱히 없고, 할아버지가 썼으니 나도 쓰는 거예요. 유전적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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