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book / 도시의 의미를 묻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도시의 의미를 묻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인간은 모두 같은 마음일 수 없어요. 뒤에서 다른 짓을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죠. 오히려 IT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의 이기심을 좋은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공유경제’에 대한 이슈가 뜨겁습니다. 1982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을 설명할 때도 공유경제는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키워드죠. 에어비엔비를 통해 다른 집에서 장기간 또는 단기간을 살고, 우버를 통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을 우리는 흔히 공유경제의 대표적인 예로 듭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가장 잘 활용하는 세대로 보통 밀레니얼을 꼽습니다.

그런데, 공유경제는 어쩌다 ‘핫’해진 걸까요? 인구는 점점 늘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원하는 걸 모두 소유할 수 없는 현실의 영향이 큽니다. 모두 소유할 수 없으니, 함께 나눠쓰자는 취지이죠. 어떻게 보면 한국은 공유경제 실행에 앞선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만 있는 아주 특별한 문화인, 모텔의 ‘대실문화’가 그 예입니다. 객실 하나를 시간 단위로 여러 명이 나눠 쓰죠. 우버의 자동차를 시간 단위로 나눠 쓰듯이요. 개인적으로 즐기는 공유문화 중 하나는 1일 대리기사입니다. 30일 중에 단 하루, 10만원을 내면 마치 회장님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차로 이동하며 뒷자리에 앉아서 업무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IT기술을 이용해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의 모습을 시간 단위로 이루는 것이 공유경제의 핵심입니다.

공간이나 물건을 시간 단위로 공유한다는 것은, 사람을 ‘소비’에 집중하게 합니다. 내가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계속 기록합니다. 완전하게 소유할 수 없는 대신, 단기간이라도 이런 삶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소비한 것을 드러내려 할까요?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21세기, 특히 밀레니얼에게 있어 사람과의 관계는 대부분 SNS를 통해 이어집니다. 내가 SNS에서 어떻게 보이는지가 나와 나의 관계를 정의해주죠. 여러 가지 정보를 올리며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셈입니다.

공유경제를 방정식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공유경제=(사회주의× IT)÷자본주의’. 다함께 공유한다는 개념은 사회주의적 요소죠. 물론 완벽한 사회주의 개념은 아니에요. 사회주의적 분배로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IT 기술의 도움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만들어냈죠. 사회주의부터 자본주의, IT기술까지,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섞여 만들어진 게 공유경제의 개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인테리어가 멋진 셰어하우스를 계약할 수도 있고, 고급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볼 수도 있는 거죠.

현실=기술×본능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기술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우리는 유토피아적 상상에 빠집니다. 기술이 사회를 이롭게 함으로써 만들어질 밝은 미래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과학자들이 우리 사회가 12시 방향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 현실은 2시 방향으로 틀어지는 걸 저는 종종 느낍니다. 1980년대 인터넷이 시작됐을 때도 그랬어요. 인터넷을 중심으로 정보가 공유되고 수평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해석이 나왔죠.

하지만 천리안과 하이텔 같은 PC통신 서비스가 시작되며 가장 영향을 받은 것은 소개팅 문화였어요.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휴대전화나 랩톱 같은 모바일 테크놀로지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산골의 전자오두막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죠? 아직도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집에서 재택근무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회사가 아직 많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기술이 사회에 구현될 때, 늘 인간의 ‘본능’이 끼어듭니다. 공유경제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 같진 않아요.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지만, 사람은 소유에 대한 욕구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인간의 양면성입니다. 결혼을 안 하면 평생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내 짝을 찾아다니고, 결국 결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 MS(마이크로소프트) 사옥에는 개인 책상이 없어요. 임원이든 일반 직원이든 정해진 자리 없이 랩톱을 들고 다니며 업무를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자리(장소)를 원하거든요. 사진도 붙여놓고 화분도 가져다 놓으며, 책상을 나만의 장소로 꾸미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밀레니얼에게도 이런 본능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으면서도, 정착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공유와 소유

3년 만에 슬럼화가 된 세인트루이스 아파트

1920년대, 루드비히 힐버자히머(Ludwig Hilberseimer)라는 독일 출신 건축가가 아파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루드비히가 상상한 미래 도시인데, 네모난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간 아파트 단지입니다. 이 이미지를 그대로 실현한 곳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대규모 공공 주택단지에 만든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가 그중 하나입니다. 당시 도시관계자들은 인구가 늘면서 이런 아파트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도 예상했어요. 그리고 1954년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3년 만에 슬럼화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각종 방화와 마약 밀수는 물론이고 살인사건까지 일어났죠. 결국 33개 동의 아파트를 1976년까지 단계적으로 파기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아이디어가 우리나라에선 부의 상징이 됐죠. 세인트루이스의 아파트는 임대주택이었던 반면, 압구정동의 아파트는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이 갖는 독특한 기법인데 모델하우스를 먼저 짓고 계약금을 낸 다음, 중도금을 내고 잔금을 치르며 집을 소유하는 방식이죠. 이 두 곳의 아파트는 건축양식도 같고 공간구조도 비슷해요. 하지만 한쪽은 임대 다른 한쪽은 소유라는 면이 큰 차이를 가지고 온 것이죠. 평범한 사람이라면 임대한 집을 좋게 만들어서 좋은 동네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거든요. 반면 내 소유의 집이라면 애착심을 갖게 됩니다.

“소유할 필요가 없는 공유경제의 시대다.” “한곳에 정착할 필요 없이 전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이미 100년 전에 나왔던 아이디어들입니다. 100년 전 사회주의에서 “같이 공유하고 살면 행복하고 유토피아적인 세상이 될 것”이라며 이미 실행했던 일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아이디어는 완벽히 실패했습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아무것도 없던 잿더미에서 21세기로 오기까지, 60년 간의 도시의 생활을 살펴보면 많은 이슈가 있었고 변화도 컸어요. 정치적인 문제가 복잡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붕괴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저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지주였습니다. 그러다 현대로 오며 빈 공중에 아파트를 지었고, 아파트는 곧 부동산 자산으로 바뀌었죠. 자기 집을 사면 지주가 됐다고 많은 사람이 느꼈던 시대죠. 지난 60년 간의 대한민국 사회발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소작농이었던 사람들을 지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반면 요즘의 공유경제는 지주였던 사람을 다시 소작농으로 바꾸는 단계처럼 보여요. 10년 짜리 저렴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청년주거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10년 동안 저렴한 임대주택에 월세 내고 살던 사람들이 10년 뒤에는 집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못 산다고 봅니다.

만약 밀레니얼이 집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주택에서 살면 누가 지주가 될까요? 정부가 지주가 되겠죠. 그런데 정부는 실체가 없어요. 실체는 정권을 잡는 정치가입니다. 더 많은 권력을 정치가들에게 넘겨주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테리어가 멋진 셰어오피스가 많이 생겨 좋은 세상이 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없는 것이죠.

옛날에는 1년 정도의 계약을 할 수 있는 큰 기업들만이 임대 오피스 사업의 당사자였지만, 공유경제에선 시간을 쪼개서 팝니다. 분 단위로 개개인을 착취할 수 있는 거죠. 흑인 슬럼가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곳은 1달러 숍입니다. 슬럼가 주민들이 받는 주급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파는 1달러 숍이죠. 바로, 작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곳, 작은 사치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공유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자칫 소작농의 늪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공유+소유가 답이 되려면

2016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치커상을 수상한 아라베나의 엘레멘탈 주택단지 ⓒvilla verde by elemental

소유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공유마저 답이 아니라면, 해결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작품 중에 ‘엘레멘탈’이란 주택단지가 있습니다. 빈민을 위한 공동주택 프로젝트로 지어진 집인데, 절반만 완성한 주택이에요.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의 반만 짓고 나머지 반은 거주민이 살면서 소득이 늘어나면 나머지 절반을 개조하거나 증축할 수 있게끔 비워놓은 겁니다.

실제로 이 집을 산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벌고 애가 태어날 때마다 하나씩 증축하면서 집을 키워나갔어요. 사회참여형 건축가 아라베나는 이 공동주택 프로젝트로 건축가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2016년 수상했습니다. 비운 채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소유하게 해줬기 때문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완성체의 집을 만들고 임대주택으로 했다면 3년 뒤에 슬럼가가 됐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본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밀레니얼이라고 해서 윗세대와 특별히 다른 점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보다, 다른 부분은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더 정확한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필요합니다.

사실 밀레니얼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단어들을 보면, 1980년대 X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새로운 세대에 대한 표현은 여태껏 이름만 바뀌어왔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스마트시티의 내용이 유비쿼터스 시티와 똑같은 것처럼 말이죠.

제가 볼 때,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인간을 너무 착하게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같은 마음일 수 없어요. 뒤에서 다른 짓을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죠.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해 시스템을 잘 작동하게 만드는 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IT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의 이기심을 좋은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죠.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을 임대료 상승억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고 봐요. 빌딩주인은 따로 있으니, 너는 싼 임대료를 내는 소작농을 유지하라고 말하는 시스템을 대체 어느 누가 원할까요? 한 동네를 좋게 만들 수 있는 가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빌딩주인이 되게 해주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가요?

그 사람이 아직 덜 발전한 동네에서 새로 시작할 때, 예전의 가게 운영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싼 빌딩을 헐값에 살 수 있도록 대출해주는 시스템 같은 것이 있어야 해요. 혼자서 못한다면 두세 명이 모여 빌딩 하나를 살 수 있게 해줘도 좋죠. 그게 공유시스템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요? 실제로 한국의 은행은 담보대출이기 때문에, 당장 자본이 없고 아이디어만 있는 사람은 전혀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제가 금융전문가는 아니지만, 밀레니얼의 도시를 위해서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예요. 밀레니얼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경계가 이 시스템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의 부동산도 좀 다르게 진행되지 않을까, 또한 밀레니얼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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