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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쿄의 맛, 그리고 사람들

일본 속 다양한 흐름 중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기술자의 역할입니다. 컨셉과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기술자가 있어야 시장을 둘러싼 모든 관계가 건강하고 탄탄해질 수 있습니다._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김혜준컴퍼니 대표)

세계 각국을 다니며 맛과 마음을 동시에 훔치는 F&B 트렌드를 발굴하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 김혜준 대표의 별명은 ‘빵요정’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빵요정의 추천이라면 믿고 먹는다’는 사람들과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김혜준 대표의 추천을 신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보고, 먹고, 경험해보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생각하며 쌓아온 그의 인사이트는 누구도 쉽사리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외식업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김혜준 대표는 레스토랑 매니저, 파티시에, 교수를 거쳐 지금은 다양한 책을 집필하며 브랜드 컨설팅을 담당하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주옥, 톡톡, 밍글스, 식부관, 효도치킨, 마마리마켓 까지. 외식업계를 들썩이게 한 공간들 곳곳에는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녹아 들어있다.

그의 아이디어와 전략의 원천은 어디일까? 김혜준 대표는 일본, 그 중에서도 도쿄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도시로 손꼽았다. 그가 생각하는 도쿄는 소수의 취향이 다수를 리딩하는 도시이자 전통과 현대문화가 융합돼 독보적인 정체성이 묻어나는 곳이다.

도쿄를 찾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해야 할까? 김혜준 대표의 발자취를 따라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멋과 맛의 공간을 살펴보면, 지금 일본에서 살아 숨 쉬는 흐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도쿄, 전통이라는 유산을 현대의 자양분으로 삼은 도시

“일본은 헤리티지를 현대화시키고 그것을 콘텐츠로 만드는 능력이 얄미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도쿄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는 부분도 그것입니다”

최근 일본에는 전통적인 차 문화, 음식 문화, 의복 문화 위에 모더니즘을 더해 새로움을 나타내는 업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단순히 전통의 명맥을 잇고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젊은 세대와 외국인을 타깃으로 전통을 넘어선 무언가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로컬푸드 소비 확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 역시 그저 ‘신토불이’를 외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 내 소규모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에서 기술을 더해 제품의 부가가치와 활용도를 높이는 기술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기술자를 위한 세상,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

매주 주말, 아오야마 도심에서 열리는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은 전국에서 모인 생산자와 소비자, 기술자가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기술자는 생산자의 식재료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김혜준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은 이런 흐름 속에서 그 어느 곳보다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주 주말, 아오야마 도심 한가운데 UN대학교에서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대학교 안에는 소비자들이 쉽게 지역 농산물을 살 수 있는 직거래 장터는 물론이고 독특한 골동품을 만날 수 있는 가게가 문을 연다. 계란, 대파, 커피, 맥주, 빵, 과일, 사케는 물론이고 기모노와 유타카, 보석과 접시까지 대학교 속 장터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기술자는 자신만의 솜씨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은 과일이나 채소를 활용해 주스나 잼, 처트니 등을 선보이는 식이다. 같은 식재료일지라도 기술자의 능력과 목적에 따라 원재료는 더욱 다양성을 갖게 된다. 생산자의 재료가 기술자의 손을 거치며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역 내 소규모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관계를 더 탄탄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파머스 마켓에서는 정기적으로 빵과 커피를 단독 콘텐츠로 다뤄 축제를 열기도 한다. 특히 빵 페스티벌로 인기를 끈 ‘Pan Matsuri(팡 마츠리)’는 매년 지역 내 다양한 빵을 선보이고,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이를 하나의 전시 형태까지 발전시키기도 했다. 작년에는 빵이 가진 이야기를 카드로 만들어 전시했으며, 올해에는 제빵사의 손을 본떠 제작한 작품을 빵과 함께 선보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선사했다.

물론 기술자의 역할과 중요도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두드러진다. 지난 5월 열린 2019년 팡 마츠리에는 축제 공간 한가운데 미니 가마가 들어섰다. 가마를 만든 제작자가 무료로 직접 빵을 구워주는 이벤트를 선보이기 위한 기획이었다. 단순히 빵 하나를 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 빵을 먹는다’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축제 속 활동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이처럼 축제 속 작은 행사 하나에서도 본질과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기술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는데, 기술자의 능력이 생산자의 그것만큼이나 큰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처럼 의미 있는 작업을 총괄하는 곳은 어디일까? 정부나 지자체 혹은 대기업을 떠올리기 쉽지만, 모든 작업은 미디어 서프(Media Surf)라는 작은 미디어 회사의 손 아래 이뤄진다. 그들은 매주 파머스 마켓을 기획하고 잡지를 발간하기도 하며 자유대학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교육 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이러한 일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지속 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멀티플레이어, 미디어 서프

종이 매체와 온라인, SNS와 영상 등을 조화롭게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 서프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미디어 서프는 앞서 살펴본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과 도심형 푸드코트인 커뮨 246을 통해서 도시의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기술자를 잇고, 이처럼 새로운 가치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사진과 영상 그리고 활자로 남겨 아카이빙하는데 그치지 않고 음식, 농사, 배움이라는 키워드로 행사를 기획한 뒤 인쇄물로 출판하기도 한다. 도시농업 매거진 노라(NORAH)를 발행하는 것 역시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이외에도 노가 호텔 우에노를 브랜딩하며 지역 생산 제품들로 어메니티를 채워 넣고 호텔에서 지역 문화 이벤트와 워크숍 등을 선보였다. 또한 브리콜라쥬 브레드 앤 코의 홈페이지 제작을 맡아 만드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력했다. 브랜드 자체가 기술자의 손길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어필하며 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작업물을 내놓은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 서프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일본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생산자와 기술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을 자처하고 있다.

컨셉과 콘텐츠의 본질을 묻다, 나마에 시노부의 공간들

나마에 시노부 레페르베상스 총괄 디렉터. 그는 레스토랑의 기본인 음식뿐 아니라 매장을 채우는 다양한 요소들을 콘텐츠로 촘촘하게 채운다. ⓒ김혜준
저는 기술자이기 때문에 음식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교 역할을 합니다._나마에 시노부 레페르베상스 총괄 셰프

기술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최근의 일본 문화에서 미쉐린 2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레페르베상스(L’effervescence) 총괄 디렉터인 나마에 시노부(Namae Shinobu) 셰프는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마에 시노부가 레페르베상스에서 선보이는 샐러드의 이름은 ‘Artisan farmers & their products(농부 장인들과 그들의 생산물)’이다. 다소 긴 이름의 이 샐러드는 25가지 채소를 하나의 샐러드로 조화롭게 재탄생 시킨다. 그의 손길로 생산자와 소비자는 공간을 넘어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이처럼 섬세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콘텐츠로 승부하는 그는 지난해 도쿄 롯본기에 문을 연 브리콜라쥬 브레드 앤 코(Bricolage Bread & Co)를 통해 공간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브리콜라쥬는 나마에 시노부 셰프가 오사카의 베이커리 ‘르 쉬크레 꾀흐’를 운영하는 아유미 이와나가, 노르웨이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푸글렌 커피 도쿄’의 코지마 켄지와 함께 만든 베이커리 카페다. 손재주, 손으로 하는 수리 혹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 브리콜라쥬를 상호명에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원하는 것이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의지와 철학을 담아 공간의 문을 열었다.

많은 이들이 공간을 만드는 데 있어 어떤 컨셉을 활용할지 고민하지만, 브리콜라쥬는 콘텐츠를 먼저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음식은 이곳의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콘텐츠이지만, 브리콜라쥬를 채우는 콘텐츠 중 단연코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이기도 하다. 브리콜라쥬 내 거의 모든 음식은 원산지가 일본인 재료만 사용한다. 지역 공급망을 활용하여 일본 현지의 다양한 생산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의 재료 수급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기술자와 생산자의 관계가 소비자까지 확대된 것이다. 때문에 맛만큼이나 생산·제작·유통의 과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이는 매력적인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브리콜라쥬의 가장 기본적인 콘텐츠는 음식으로, 일본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사용한다. ⓒ김혜준

음식뿐만이 아니다. 200-300년 전 제작된 도자기 ‘아리타 야키’를 아리타에서 직접 공수해 현대적 접시와 혼용하여 사용하고, 식사용으로 제작된 커트러리 역시 일본의 대장장이가 직접 제작한 수제품을 내어놓는다. 매장 안을 둘러싼 마룻바닥은 100여년이 넘은 초등학교에서 가져와 그대로 사용했다. 심지어 스피커는 1960년대 탄노이 스피커 오토그라프 빈티지 모델로 나마에 시노부가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 눈길을 뚫고 직접 공수한 모델이다. 세월이 담긴 스피커로 소리로 공간을 채우고, 세월을 이겨낸 나무를 바닥으로 사용한 것은 세월에 녹아 든 멋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겠다는 그의 고집스런 신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양한 협업 역시 브리콜라쥬를 채우는 주요 콘텐츠 중 하나다. 최근에는 콜롬비아에서 활동하는 카카오 헌터 마유미 오가타를 초대해 세미나를 열고 그가 유통하는 카카오를 이용해 만든 카페 모카 메뉴를 선보였다. 또한 일본 최초로 커피콩 재배와 생산에 성공한 오키나와의 ADA 커피 팜에서 만든 생두로 로스팅한 커피 메뉴도 내놓았다.

이처럼 매장을 채우는 모든 것이 하나의 콘텐츠로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수많은 콘텐츠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한데 묶어 이를 바탕으로 공간을 촘촘히 채워나간 것이다. 고객, 농부, 직원, 유통업자, 요리사 까지 브리콜라쥬와 연결된 모든 이들의 행복을 꿈꾸는 나마에 시노부의 꿈과 의지는 자연스레 콘텐츠의 질을 높였고, 공간의 완성도 자체를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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