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book / 기초 화장품은 세분화되고, 색조가 뜬다.

기초 화장품은 세분화되고, 색조가 뜬다.

<주먹왕 랄프>는 8비트 게임에 등장하는 악역 캐릭터의 이름이자, 2012년 개봉한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 속 랄프는 아침마다 ‘다고쳐 펠릭스 Fix-It Felix Jr.’라는 게임 세계로 출근합니다. 그의 일과는 두 주먹으로 빌딩을 부수는 것. 반면 게임의 주인공인 펠릭스는 랄프가 부순 건물을 고치며 게임을 진행합니다. 둘은 얼핏 보기에 적대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함께 있어야 빛이 나는 직장 동료입니다. 건물을 고치는 게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곳저곳을 부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락실이 문을 닫으면 게임 속 캐릭터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친한 사람끼리 모여 파티를 열고,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죠. 작은 오락기 속 세상은 거대한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관계를 고민하고, 정체성을 찾고자 애쓰니까요. 그렇게 매일의 게임이, 한 인물의 삶과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감독의 상상에서 비롯된 허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물건에도 저마다의 세계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CJ올리브네트웍스에서 운영하는 헬스앤뷰티스토어(이하 H&B 스토어) ‘올리브영’에도 랄프가 사는 오락기처럼 자그마한 세계가 있습니다. 매장마다 진열대 두 칸 너비로 구성된 이곳에는 ‘맨즈 그루밍(Men’s Grooming)’이라는 간판이 달려있습니다. 그 아래로 수십가지 브랜드의 남성용 제품이 놓여있죠. 언제 이렇게 많은 브랜드가 생겼나 싶을 정도입니다.

진열대 위 제품들은 끊임없이 모습과 위치를 바꿔가며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남성 그루밍 비즈니스 연구회’ 두 번째 모임에서는 올리브영 맨즈 그루밍 코너의 역사와 그곳에서 벌어진 치열한 경쟁을 살펴봤습니다. 지금부터 CJ올리브영 남성 화장품 MD 김강호 과장이 발표한 ‘올리브영 남성화장품 이야기’를 공유하겠습니다.

올리브영 최초, 남성 화장품 담당 MD가 되다.

올리브영 최초, 남성 제품 화장품 담당 MD가 된 김강호 과장. 

“제가 매장에서 근무할 때는 남성 화장품 발주를 자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많이 팔리지도 않고 일만 느는 것 같았거든요. 그 때는 제가 남성 화장품 MD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죠.”

김강호 과장은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2009년 올리브영에 매장 영업관리직으로 입사해 2년 뒤 직∙가맹점 관리를 맡게 됩니다. 그러던 2014년의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그가 상품 MD본부의 남성 화장품 담당 MD가 된 것입니다. 영업관리 직군에서 MD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다 여성용 제품이 많은 올리브영에서 남성화장품 MD로 일하려니 걱정이 앞섰다고 합니다.

“ 올리브영에서 남성 화장품만 담당하는 MD는 제가 최초입니다. 그 전엔 헤어 케어 제품을 담당하는 MD가 남성 화장품을 0.5개 카테고리 수준으로 운영을 했거든요. 그러니 독립적인 카테고리로 남성 화장품을 보게 된 시기가 이쯤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로드숍과 백화점의 매출이 줄고, 온라인과 H&B스토어의 매출이 늘어난 덕에 올리브영의 위상 또한 높아졌죠. 2018년 공개된 유로모니터 통계를 살펴보면, 2016년부터 2년 동안 남성 화장품 시장은 76%나 성장했습니다. 올리브영은 어떨까요. 2018년 남성 화장품 시장에서 올리브영의 매출이 차지한 비중은 약 7%로 추정됩니다. 단일 브랜드의 매출이기에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올리브영이 남성 소비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김강호 과장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올리브영의 방문객 중 약 11%가 남성이라고 합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적게 느껴지지만 남성 방문객의 수로 매출을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올리브영의 남성 화장품 매출 중 약 60%가 여성의 대리구매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엄마나 아내가 화장품을 대신 사다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익숙한 광경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장에 교란을 일으킵니다. 대리구매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직접 소비자인 남성의 취향이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구매자와 소비자 중 어느 쪽 취향에 맞춰야할 지 몰라 혼란스럽습니다.

다행히 대리구매의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2년 동안 남성의 직접 구매 비율이 10%가량 늘었는데, 이는 남성용 색조 화장품이 인기를 끌면서 제품을 직접 확인하려는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김 과장은 남성의 직접 구매를 늘리기 위해 ‘블랙OOO’나 ‘그OO’ 같은 히트상품을 보유한 남성 전용 브랜드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위 브랜드는 남성의 직접 구매 비율이 평균치보다 5~10% 가까이 높습니다. 오프라인 기반의 비즈니스를 펼치는 H&B 스토어에서 고객의 직접 방문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남성 고객의 직접 구매를 유도하는 제품은 자연스럽게 올리브영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남자와 외국 남자는 다르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몹시 까다롭습니다. 여성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을 남성 전용 제품으로 바꾸어 출시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음악이나 패션처럼 해외 트렌드를 가져오는 것도 썩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김 과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4~5년 전 유행한 여성용 바디 스프레이 ‘바디 판타지’와 남성용 제품 ‘보드맨’의 상반된 판매량을 소개했습니다.

‘바디 판타지’가 처음 출시될 당시, 올리브영 매장은 제품을 테스트해보는 여성 고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이것은 국내 여성 뷰티 시장에 ‘바디 퍼퓸’이라는 카테고리를 개척한 사례로 남았죠. 김 과장은 여성 시장에 안착한 바디 스프레이 카테고리가 남성 시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올리브영에 ‘보드맨’이라는 남성 전용 제품을 론칭했습니다.

“올리브영 판매 데이터를 보면 패턴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여성 뷰티에서 특정 카테고리가 자리잡고 2년 정도가 지나면 남성 제품 쪽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하는. 그래서 바디 스프레이 쪽도 한 번 시도해본거죠.”

그러나 그의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담배 냄새나 체취 제거를 넘어 몸에 향기가 남는 제품은 남성 고객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자칫 부담스러운 향으로 ‘비호감’이 될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옆 나라인 일본의 경우, 데오드란트를 비롯한 남성용 바디 스프레이 판매가 활발하다고 합니다. 김 과장은 습하고 더운 날씨와 에티켓을 중시하는 일본문화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땀이 나기 쉬운 날씨와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만나 바디 스프레이를 선호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한국 남성도 바디 스프레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 과장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말하며 “보드맨의 실패는 ‘향’의 실패이지, 카테고리의 실패라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남자 향수

  • 그루밍 최전선 5개 기업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남성 소비자는 누구인가.

    신기주 외 6명

    매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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