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book / 유통을 넘어 남성 브랜드로, 백화점의 변신

유통을 넘어 남성 브랜드로, 백화점의 변신

시니어 인턴으로의 첫 출근 전 날, 벤 휘테커(로버트 드 니로 분)는 다음날 입을 셔츠와 슈트를 꺼내놓습니다. 반듯한 셔츠와 잘 닦여진 구두는 수십 년간 직장생활을 해왔던 그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벤이 출근하는 회사는 작은 온라인 쇼핑몰로 출발해 1년 만에 220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한 ‘어바웃 어 핏(About a fit)’입니다.

대표는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타고다니며, 직원들은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출근해 자유롭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몸에 딱 맞는 슈트와 오래된 사무용 가방을 들고 출근한 벤의 모습을 본 직원들은 꼭 한마디씩 건넵니다. 옷은 좀 편하게 입어도 된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인턴생활 내내 갖춰진 슈트를 입기를 그만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된 것이 가장 멋진 것이라며 그의 아이템을 탐내는 직원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벤은 오랜 직장생활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회사가 처한 다양한 문제들에 혜안을 제시해주었는데, 잘 차려입은 그의 의복은 “의복을 존중해야 옷이 말한다(The soul of this man is in his clothes)”는 셰익스피어의 오랜 격언이 틀린 말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영화 <인턴>은 옷에 대한 현대인의 관점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대기업에서도 캐주얼 복장을 입고 출근하기를 권장하는 곳이 생기고, 옷을 입는 일이 규칙이 아닌 취향의 문제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비의 양식도 변화했습니다.

‘어바웃 어 핏(About a fit)’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프라인 매장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패션매장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8년 뉴욕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백화점 카슨스(Carson’s)와 시어즈(Sears)의 사례는 그 현실을 보여줍니다. 의복 소비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점마저 문을 닫게 된 것이죠.

신세계백화점 남성관 MD를 맡고 있는 선현우 부장은 "백화점은 남성에게 고난의 장소"라며 "새로운 소비자 분석 방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신세계 백화점에 2005년 입사한 이후 줄곧 남성패션 MD로 활약해 온 선현우 부장의 고민도 비슷했습니다. 유통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백화점은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선현우 부장이 선택했던 것은 셔츠 브랜드 ‘분더샵 카미치에’의 론칭이었습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판단한 시장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는 “셔츠 시장이 크게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줄어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패션이 개성을 나타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더라도 남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의복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남성 그루밍 비즈니스 연구회’ 다섯 번째 모임의 주제는 바로 ‘백화점의 생존 전략으로서의 남성브랜드’ 입니다. “전통적인 백화점의 역할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면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 것이다”고 선현우 부장은 확신합니다. 그래서 남성 의복에 가장 중심이 되는 셔츠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분더샵 카미치에를 탄생시킨 것이죠.

이날 강연에서 선현우 부장은 전통적인 소비의 공간인 백화점이 처한 위기와,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남성 그루밍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어바웃 핏’의 직원을이 벤 휘테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듯 선현우 부장의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과연, 오래된 것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요?

매체에서 말하는 남성 트렌드, 백화점엔 안 통했다.

*노무족ㆍ일코노미ㆍ그루밍족ㆍ 여미족 최근 남성 소비자를 분석한 매체 기사에서 가져온 키워드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석이 백화점에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선현우 부장은 2016년부터 신사복 매장에서 티 카페, 그루밍 매장, 피규어 매장 등을 도입해 봤는데 모두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했다고 말합니다. 매출 규모가 판매사원 2명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무족: ‘아저씨가 아니다’라는 의미의 노 모얼 엉클 (No More Uncle)에서 비롯된 용어로 기존의 아저씨와는 다른, 폭넓은 사고와 생활을 추구하는 40~50대 중년 남성을 말한다.
*일코노미: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와 혼자를 뜻하는 숫자 1을 합성한 단어로, 나를 위해 소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루밍족: 마부가 말을 관리하는 데에서 유래한 용어로 패션과 뷰티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남성을 뜻한다.
*여미족: 젊고(Young) 도시(Urban)에 사는 남성(Male)을 결합한 신조어로, 외모와 패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새로운 남성 소비자를 뜻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선 부장이 고민 끝에 발견한 것이 ‘남성들에게 백화점은 고난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백화점 남성패션 총괄 MD가 백화점을 ‘고난의 장소’로 정의하다니요. 멤버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졌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주말에 주차하려고 하면 한 시간씩 걸리기도 하죠. 리액션이 제일 어려운데 여자친구, 또는 아내가 옷을 입고 나오면 리액션 해줘야 하죠. 내 옷을 사도 괴로움은 마찬가지죠. 나는 걸어다니는 마네킹 역할을 하고 아내와 여자친구가 판매 사원과 얘기하고 있죠. 지갑은 내가 열고요.”

선 부장의 말대로, 백화점은 결코 남성 중심의 공간이 아닙니다. 10여 층에 이르는 전체 공간에서 남성복 코너가 2개 층에 불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 백화점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도 다 남성 소비자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직관적인 쇼핑을 추구하는 남성들은 판매사원이 1:1로 붙어 상담을 해주는 매장의 서비스 또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백화점이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던 시스템 자체가 남성 소비자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이죠. 선 부장은 남성관에 남성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보통 남성’의 소비패턴을 파악했습니다.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퍼스트 펭귄’을 잡아라.

‘퍼스트 펭귄 First Penguin’은 말 그대로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정보를 검색하여 누구나 만족할만한 결과를 찾아내는 현명한 소비자를 말합니다. 퍼스트 펭귄이 움직이면, 이들 따라 브랜드의 가치를 평가하는 인플루언서들이 SNS를 통해 브랜드를 전파하게 됩니다. 이렇게 브랜드 이미지가 정립이 되면 그 이후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은 SNS나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브랜드를 기억하고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선현우 부장은 퍼스트 펭귄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듭니다. 다이슨 청소기는 남성을 청소하게 한 제품으로 유명합니다. 가사를 분담하는 문화도 한 몫 했지만, 기술을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다이슨의 방식도 남성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퍼스트 펭귄인 남성 소비자는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정보를 검색합니다. 가령 청소기가 필요해 구매를 마음먹은 퍼스트 펭귄 소비자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청소기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입수합니다. 결국, 흡입력과 무선기능이 새로운 청소기를 선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능임을 인지하고, 두 기능이 모두 뛰어난 다이슨 청소기를 구입하게 됩니다.

인플루언서는 조금 다른 역할을 합니다. 퍼스트 펭귄은 필요에 의해서 정보를 검색하고, 문제를 분석해 최선의 결과물을 선택합니다. 반면 인플루언서는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제품을 구매합니다. 대부분은 퍼스트 펭귄을 따라서 말이죠. 그리고는 제품 구입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이었는지를 분석하고 전파합니다. SNS상에서 이들을 팔로우 하는 사람들은 퍼스트 펭귄과 인플루언서가 찾아낸 네임드 브랜드를 인지하고 그것을 구입하게 됩니다.

선현우 부장은 남성 소비자의 소비 패턴은 이처럼 퍼스트 펭귄을 따라간다고 말합니다. 목적 지향적이고, 최소한의 시간을 통해서 최대의 결과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데일리 텔레그라프(Daily Telegraph)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쇼핑시간은 2시간인데 반해, 남성들의 쇼핑시간은 평균 26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쇼핑에 나서고,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으면 그 자리에서 쇼핑이 끝나는 것입니다. 쇼핑뿐만이 아닙니다. 퍼스트 펭귄을 따라 고민 없이 빠르게 제품을 구매하는 성향은 이러한 남성 소비자들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사고 싶은, 소비 근거를 만들어라.

두 번째 특징은 ‘최소한의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선현우 부장은 남성 소비자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소비를 설득할만한 매혹적인 이유가 있다면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망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동차, 시계, 카메라, 오디오 등 무선청소기보다 훨씬 고가의 제품들의 구매 패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범주에 드는 제품들은 취미로 구입하는 남성들이 쓰는 돈은 상당합니다. 합리적인 이유를 대고 구매를 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가격이죠.

선현우 부장이 예로 든 것은 ‘빨간 딱지’로 유명한 라이카 카메라입니다. 라이카의 주력 카메라인 M시리즈는 1000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초점을 잡는 기능이 수동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면, 가격도 훨씬 싸고 기능도 좋으며 결과물도 뛰어난 카메라가 널렸는데 라이카 카메라를 살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라이카 카메라를 구입하는 남성들은 그것이 과거 RF(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카메라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명 사진가들의 카메라였다는 이유로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카메라만 그럴까요. 남성 소비자들은 롤렉스를 구입하는 이유를 ‘크로노그래프(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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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주 외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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