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book / 어찌됐든, 기회가 있는 곳에 서야 합니다_김홍익 안전가옥 대표

어찌됐든, 기회가 있는 곳에 서야 합니다_김홍익 안전가옥 대표

큰 변화는 개인이 혼자 발버둥댄다고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인 거죠. 그 파도에 올라타야 합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이런 고민 한번쯤 해봤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중학교 때는 젝스키스 빠순이였고, 고등학교 때는 수능 공부에 전념한 것 외 딱히 특별할 게 없었죠.

어떤 분야에 천부적 소질이 있거나 유별난 취미에 빠진 적도 없었습니다. 대학교 입학 뒤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죠. 막연히 기자가 되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정치외교학과를 전공으로 정했고, 틈틈이 동아리 활동을 하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광고회사를 다니게 된 것도 다소 신기한 인연 때문이었어요. 건너 아는 친구가 광고회사에 들어갔는데, 일주일에 하루 도와줄 알바를 뽑는다고 했습니다. 급여가 나쁘지 않았고, 매일 중앙도서관에서 사는 것도 지겨울 때여서 기분 전환 겸 시작하게 되었죠.

주 1회 알바로 나간 광고회사에서 다음날 인턴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사원이 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인턴으로 같이 일했던 팀과 호흡이 잘 맞았던 게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렇게 시작한 회사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답답했던 취준생에게 현업은 생생한 기운을 주었죠.

2006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세 개의 회사를 거쳤습니다. 이직을 하며 적당히 연봉을 올렸고, 고과가 좋으면 꽤 많은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죠. 광고회사도 어쨌든 회사이기에 업무 루틴이 생겨 익숙해졌고, 그 안에서 업계 관련자들과 관계를 다지며 연차를 쌓았습니다.

그러다 별안간 공간을 창업해보겠다며 퇴사를 강행했습니다. 9년차 직장인의 출근 종료 선언은, 회사 내부에서 나름 화제가 되었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젊은 나이에 직장을 나와 창업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부럽다는 사람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발견해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았어요. 한 가지에 엄청나게 몰입한 ‘덕후’는 아니었죠. 그런 저에게 스터디 6회차 강연자로 초청된 김홍익 대표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덕후이기도 하면서도 아주 일찍부터 관심사가 아주 뚜렷했거든요.

김 대표는 삼성전자, 카카오를 거쳐 현재는 장르 문학을 발굴하는 스토리 프로덕션, ‘안전가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정말 ‘덕질’을 할 정도로 좋아하던 것을 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해 강연에 초청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덕질을 유지했고, 그것을 업으로까지 이어가게 됐는지 물어보려고 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능력을 갖고 있더군요. 바로 ‘파도에 올라타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건 정말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든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죠.

준비된 자가 밀려오는 파도를 만났을 때

김홍익 대표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역사와 IT의 덕후였습니다. 온갖 종류의 삼국지를 섭렵하며 어떤 일을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비교적 이른 시기에 깨달았죠. 대학생 시절 인턴 경험도 당시 IT 업계 대표 주자였던, 야후와 MS에서 쌓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국제 금융 위기가 찾아오며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정규직 채용은 불발됐지만, 이후 삼성전자에 IT관련 업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뒤에는 IT 업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던 카카오로 이직했고, 다음과의 인수합병 등 큰 프로젝트를 완수한 뒤, ‘덕질’로 하던 장르 문학을 사업으로 하는 ‘안전가옥’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김홍익 대표의 포트폴리오. 결국 좋아하던 분야의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자료 김홍익]

그는 첫 직장 삼성전자를 다니다 문득,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의 타이틀을 떼면 나는 뭐지? 이 회사를 오래 다닐 것 같지는 않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커리어의 다음 스텝은 누구에게 물어보며 알아봐야 하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직을 알아보며, 헤드헌터를 만날 때마다 삼성에 대한 애사심만 늘어갔습니다. 매달 같은 날, 따박따박 들어오는 고액 월급과 보너스, 그리고 누구나 아는 회사. 도대체 여기 말고 어딜 가면 좋을까, 고민은 쌓여갔죠.

그때 김홍익 대표에게 기준점이 된 소재가 바로 모바일이었습니다. 2012~2013년 당시에는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상황이었고, 이와 관련된 신규 회사들이 하나둘 런칭한 시점이었죠. 그리고 그 중심에 카카오가 있었습니다.

애니팡이라는 게임으로 주목 받던 카카오는 당시 업계 내 핫이슈였습니다. 마침 지인이 카카오에 있었기에 김 대표에게도 기회가 닿을 수 있었죠.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한 IT업계의 새로운 세상. 여기에 월급도 끊기지 않고 잘 나올 것 같다는 점도 안심 포인트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직한 카카오에서의 첫 업무는 전략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김범수 의장 옆에서 그의 요구를 처리하는 게 주 업무였죠. 너무나 빠른 성장 속도에 비해 체계가 부족했던 회사라, 그것만으로도 벅찼다고 해요. 이직한 다음해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Daum)과 합병하는 빅딜 업무로 정신없는 한해를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다음-카카오 PMI프로젝트 PM,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프로젝트 PM, 카카오톡 비즈니스 전략 담당을 거치며, 카카오의 초고속 성장을 함께 경험하고 만들어갔습니다. 덕분에 당시 업계에서 활약했던 IT 핵심 인재들과의 네트워킹도 자연스레 형성되었죠.

변화의 파도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카카오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은

  • 창업, 이직, 사이드잡, 나는 뭐가 맞을까?

    원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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