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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도 스토리가 필요하다

Editor's Comment 건물주와 세입자의 아름다운 공생은 어려운 걸까요. <공간 기획부터 운영까지, 미래 건물주 집중과정>은 지역을 살리고 변화를 이끌 건물주, 혹은 미래 건물주를 위한 콘텐츠 입니다. 동명의 폴인스터디를 정리했습니다. 적절한 토지를 찾는 것부터 콘텐츠를 운영하는 방법까지 업계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담았습니다. 2화에서는 1화에 이어, 공간 기획의 첫 걸음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잘 만든 공간은 어떤 생각에서 탄생하는 걸까요. 심영규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잘 기획된 공간의 공통된 요소는 분명한 콘셉트, 그걸 잘 표현한 디자인, 그리고 남다른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잘 섞는 것이죠. 

잘 기획된 공간에는 콘셉트, 디자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잘 기획한 공간을 몇 곳 소개해드릴텐데요. 먼저 여러분이 계신 이곳 ‘정음철물’을 말씀드릴게요. 정음철물을 정의하는 단어는 ‘동네 건축 컨시어지(concierge) 서비스’입니다. 캐치프레이즈부터 공간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죠. 앞으로 소개할 공간에는 모두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요. 이런 카피를 만드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공간이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단어를 써야 하지만 너무 포장된 느낌이 들게 만들면 안 되거든요. 공간의 본질을 담아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저희도 정음철물 카피를 만들 때 ‘동네’를 넣을지 말지, ‘컨시어지’를 넣을지 말지 한 달 넘게 고민했습니다(웃음).

정음철물을 설명하는 ‘컨시어지’란 말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컨시어지는 수위나 안내원을 뜻합니다. 호텔에서는 투숙객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는 서비스를 말하죠. 고객 요구에 맞춰 상담하는 서비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저는 정음철물에 이 단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개념의 철물점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죠. 정음철물은 공간과 인테리어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를 위한 편집 상점입니다. 그와 동시에 철물점의 집수리 컨시어지 서비스를 결합한 동네 커뮤니티 공간이죠. 실제로 연희동은 주택이 많은 동네의 특성상 철물점이라든가, 집수리에 대한 수요가 꽤 있는 지역인데요. 이런 지역 특성과 이용자를 분석해 ‘철물점의 재해석’이란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9년 6월에 오픈했죠.

저는 일본 도쿄 R부동산의 ‘툴박스(Tool box)’라는 서비스를 보며 새로운 철물점에 대한 영감을 받았는데요. 2003년 온라인을 기반으로 시작한 도쿄 R부동산은 마니아 성향이 있는 부동산 편집숍이자 중개소입니다. 면적과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부동산이 아니라 거주자 취향에 따라 공간을 고르고 스스로 공간을 편집하고 구상하는 주거 DIY를 제안하죠. 툴박스는 주거 DIY에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는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개인들이 많아지자, DIY를 하며 생기는 궁금증도 많아지기 시작했는데요. 툴박스는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입니다.

툴박스는 철물만 파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를 팝니다. 예를 들면 툴박스에서 디자인한 A스타일 전체를 팝니다. A스타일에는 바닥재와 벽, 하드웨어, 콘센트와 전선까지 모든 것이 갖춰져 있죠. 툴박스는 소비자가 A라는 스타일을 택하면 그 스타일에 맞춰주되 스위치를 두 개 달지, 세 개 달지 하는 세부적인 부분은 소비자가 옵션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게 미래의 철물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도쿄 R부동산 전체 매출보다 툴박스 매출이 더 크다고 합니다. 도쿄R부동산이 일본 전국에 16곳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툴박스 매출이 더 잘 나온다는데요. 이것은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이 분명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철물점은 규모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철물점을 상상해보면 좁은 매장에 1000여 개 정도 제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막상 뭔가를 찾으면 없는 게 많습니다. 못 하나를 사려고 해도 그 종류가 수백 가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본의 경우 도심이 아닌 외곽에 있는 작은 철물점에는 고리만 해도 수천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스스로 공간을 만드는 DIY 시장이 한국보다 크기 때문인데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의 DIY 시장은 40%, 일본은 10%라고 하죠. 한국은 어느 정도일까요? 아마 1%도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선호된 주거 형태가 아파트였는데요. 아파트 거주자들은 관리비를 내고,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그 관리비를 활용해 일괄적으로 주택 관리를 하기 때문인지 DIY에 대한 수요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한국의 특징 때문에 “한국에서 철물점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웃음). 물론 요즘 사람들에게 “당신의 공간 취향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한다면, 똑 부러지게 대답해줄 분이 많지 않겠죠. 하지만 DIY 수요가 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늘 것이라고 봅니다. 의식주를 놓고 볼 때 패션의 다양성이 늘고, 음식의 취향이 점차 생긴 것처럼, 공간에 관한 취향 역시 생기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희는 공간의 취향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서비스를 하는 거고요.

옛것과 현재의 것을 잘 섞은 공간에 주목합니다. 

정음철물 매장은 아담한 편입니다. 규모가 작은 데다, 벽이나 천장처럼 옛날부터 있던 부분을 버리지 않고 살린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체 어떤 인테리어를 했나” 묻고 싶은 분도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이런 인테리어가 더 힘듭니다. 일단 어떤 걸 남기고 어떤 걸 새로 할지 결정하는 것도 어렵죠.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분은 벽과 천장을 없애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쿠움 파트너스 김종석 대표님이 반대하셨죠. 정음철물의 전신인 정음전자는 김종석 대표님이 운영하던 철물점이었는데요. 본인 작업장이라 애착도 있으셨고요. 오래된 것을 살리는 취지로 그런 의견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오래된 벽과 천장이 예쁘다고 생각해서 이 부분을 그대로 살리길 원했습니다. 반면 디자이너는 벽과 천장을 남겨두면 달리 공사할 게 없다고 하셨죠. 거의 3주 동안 “부수자” “남기자”하며 싸우다가 결국 남기기로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남기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이곳 자체가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니까요. 새 자재를 가져다 옛날 것처럼 만든다 해도, 오래된 시간성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20~30년 전에 만들어 놓은 게 있는데, 그걸 다 부수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 “카페인가요?” 정음철물을 찾은 분들이 종종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그때마다 저희는 “인테리어 철물 편집숍입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곳에 물건이 적게 있는 것을 또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그 질문에는 "매장이 작아서 물건 종류를 늘리지 않고, 기존 철물점에서 파는 것 위주로 취급하고 있다"고 답변해 드립니다. 이런 점을 보완하려고 셀렉숍도 운영하고 있고요. 저희가 <감 매거진>을 만들면서 취재했던 많은 건자재 회사와 가구 회사의 양품을 저희만의 기준으로 골라서 선보이는 데요. 현재는 4~5개 회사의 제품이 들어와 있어요. 매출이 아직 많지 않아서 자체 디자인한 상품보다 외부 브랜드의 물건을 판매 대행하고 있죠. 저는 이게 정음철물의 스텝 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선택한 브랜드를 소개해드릴게요. 1973년 설립한 삼일조명에서 시작해 라이마스(LIMAS)로 이름을 바꾼 브랜드가 그중 하나입니다. 영어로 쓴 삼일(SAMIL)을 뒤집어 읽으면 라이마스가 되죠.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를 아들이자 건축을 전공한 곽계녕 대표가 이어받아 리브랜딩했는데요. 삼일조명의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조명 디자인을 선보이죠. 디자인그룹 레어로우(RARERAW)의 가구도 있습니다. 레어로우의 모회사는 ‘심플라인’입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을지로 철물점을 이어받은 아버지가 철제가구 공장인 심플라인을 만들었고, 심플라인 대표의 따님인 양윤선 대표가 더 좋은 가구를 만들겠다며 창업한 것이 레어로우입니다. 이처럼 저희가 판매 대행하는 양품은 시간성, 지역성을 품은 브랜드가 많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정음철물은 5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입구의 쇼윈도에서 보이는 곳이 바로 ‘쇼룸’입니다. 팝업으로 브랜드를 바꿔가며 전시를 하고 있죠. 올해 말까지 전시가 꽉 차 있는 상태입니다. 저희의 기준은 좋은 양품, 지역의 좋은 장인, 그리고 디자이너 이 세 가지입니다. 지금은 양품을 전시하는 중이죠. 나중에는 20~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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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 기획부터 운영까지, 미래 건물주 가이드북

    심영규 외 5명

    매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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