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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스타트업 브랜드 매니저의 사생활

핀테크 스타트업 브랜드 매니저의 사생활

Story Book밀레니얼 31인의 라이프스타일 다큐멘터리

20분

※ 30대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이 밀레니얼을 바라보는 기성 콘텐츠에 던지는 유쾌한 미시사적 다큐멘터리! '밀레니얼 31인의 라이프스타일 다큐멘터리' <일하는 밀레니얼이 먹고사는 이야기> 중 4화입니다.
딴짓도 의무적으로 해. 그 모든 딴짓과 잡다한 생산적인 행위를 끝마친 뒤에야 내게 '휴식'을 주지.

Q. 왜 일해?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 있어. 내가 의외로(?) 외로움이 많고,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는 거야. 고백하건대, 중·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내가 대단한 위인으로 클 줄 알았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모든 일을 해내고, 역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인물이 될 줄 알았달까.

그런데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더라. 사람들의 손길과 관심이 필요하고, 혼자 하기 보다 함께 해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부족한 것 투성인 그런 사람.

일은 이런 결핍을 해소해줘.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게 하며, 나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관점을 갖게 해주지.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해결해주고. 물론 매번 인정받는 건 아니지만, 일하다 보면 내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동료도 만나게 되고, 내가 해낸 것들을 인정해주고 믿음을 주는 사람도 생겨.

혼자 있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일을 하고, 일이 모이고, 사람을 만나면 늘 새로운 기회가 생기지. 어쩌면 내가 쌓고 싶은 경제적, 사회적 자산은 일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냥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바보처럼 직장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진 않았겠지.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다른 것들도 같이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일해. 돈이 많았던 적은 없어서 아직 모르지만, 덕망·신뢰·사랑·존경·인정 같은 것들은 돈으로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꼭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Q. 어쩌다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됐어?

회사와 일, 이 둘을 나누어 설명하고 싶어.

먼저 어쩌다 이 회사. 어니스트펀드에 온 이유는 대표 때문이야. 문과생으로 자라 금융과는 담을 쌓았던 터라,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어.

서상훈 대표(이하 서 대표)와는 군대 직속 선후임 사이인데, 평소에도 서로 창업에 관심이 많아 제대 후에도 친하게 지냈어. 서 대표는 '대중들에게 금융을 쉽게 풀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로 꾸준히 설득했지만, 여러 번 고사했지.

당시 나는 친구들과 창업을 해서 5년을 버텨내고 있었거든. '고생하는 친구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했더니 기다리겠다고 하더라. 도대체 이 사람은 내 어떤 능력에 꽂혀 이토록 긴 시간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지 궁금해졌어.

몇 번의 식사 자리 끝에 결국 속아(?) 넘어가 버렸고, 15명이던 작은 스타트업에 내 미래를 걸어보기로 했어. 어제 보니 팀원이 모두 112명이더라. 솔직히 이렇게 회사가 커질 줄은 몰랐지. 속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야.

어쩌다 이 일. 어니스트펀드의 브랜드를 관리하는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고 있어.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내가 만든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마케팅을 했어. 콘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광고화해, 매출을 일으키는 일이지.

콘텐츠는 스토리텔링이 전부야. 스토리텔링은 타깃이 전부고. 타깃과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다 보니 브랜드에 관심이 생겼어. 크지 않은 회사였지만, 하나의 브랜드를 오랜 시간 고민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지.

회사가 브랜드 매니저로 일 할 기회를 주었고, 지금은 브랜드팀을 맡아 브랜드 전략 수립에서 마케팅, 개별 프로덕트 브랜딩까지 하고 있어. 브랜딩은 결국 기업에 이야기를 입히는 일이야. 기업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동료들과 사람들을 설득하며 널리 퍼뜨려 나가는 과정이 즐거워.

내 이야기를 회사가 인정해주고, 시장이 인정해주니, 브랜딩 만큼 나의 결핍을 해소해주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어.

Q. 쉴 때 뭐해?

'쉴 때'의 정확한 정의가 필요해. 내 일과는 회사 일 60%, 딴 짓 20%, 그리고 휴식 20%로 이루어져 있어. 그러니까, 퇴근 이후의 시간이 곧 '쉴 때'를 의미하진 않아. 딴 짓도 의무적으로 하지. 그 모든 딴 짓과 잡다하지만 생산적인 행위를 끝마친 뒤에야 내게 휴식을 줘.

휴식을 할 땐,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해주는 걸 해. 멍 때리고, 몽상하는 걸 좋아하지. 친구들과 카톡으로 헛소리도 하고. 주말엔 손흥민이 나오는 EPL을 챙겨보며 맥주를 마셔. 축구 게임을 좋아해서 주기적으로 사람을 모아 놓고 게임도 해. 음악을 하염 없이 듣고.

데이트도 해. 데이트할 땐 억지로 멋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안 해. 그래서 요즘의 내겐 데이트도 휴식이야.

Q. 취미가 뭐야?

캘리그라피. 수도 없이 많은 취미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6년 가까이 살아남은 인생의 취미야. 강의도 하고. 가르친 사람이 500명은 되더라.

많은 사람의 삶에 흔적을 남기기도 했어. 누군가의 생일, 조카의 돌잔치, 아무개 씨의 환갑 잔치, 수도 없이 많은 결혼식과 청첩장, 소상공인들의 가게 간판과 메뉴, 그리고 TV광고까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나는 글씨도 남겼어.

글씨체가 개성이 있어서 그런가, 사람들이 이제는 내 글씨만 봐도 내가 쓴 줄 알겠다더라. 그만큼 많이 썼고, 가장 소중한 취미야.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어. 정말 그런 게, 글씨체만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 살아온 발자취도 예측할 수 있지. 동시에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 몇 안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요즘엔 악필이라 말하지 않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어. 다들 글씨에 자신이 없는 거야. 글을 떼면 글씨부터 배우는데 말이지.

모두가 할 줄 아는데, 모두가 못하는 걸 나만 잘하면 기분이 좋아져. '글씨 쓰기'라는 일상적인 순간에서 오직 나만 빛나니까.

Ⓒ고재형 (인스타그램 @moonsengwon_)

Q.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욕조. 반신욕을 빙자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장 사랑해. 일반 가정집의 욕조는 내 덩치에 비해 작아. 다리를 꾸깃꾸깃 접고 물이 턱밑에 올 때까지 물을 받고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온갖 몽상이 떠오르지.

내가 떠올리는 아이디어와 영감은 대부분 이곳에서 나와.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기 위해 휴대폰도 꼭 들고 가.

한 번은 아침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눈을 뜨자마자 욕조에 들어가서 한 시간을 있었어. 생각도 맑아지고, 컨디션도 좋아지더라. 출근길부터 쭈글거리는 손끝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뒤론 종종 아침, 저녁,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욕조에 들어가곤 해. 사실 여기 있는 질문 중 하나도 욕조에서 썼어.

Q. 집 외에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아지트. 2017년 8월부터 친구들과 함께 꾸려온 공간이야. 이름은 MURI. 무리해서 만든 공간이라 붙여준 이름이지. 한자로는 없을 무(無), 떨어질 리(離)를 써서, 서로 떨어질 리 없는 공간이라는 뜻도 붙여줬어.

처음엔 신촌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영등포로 이사를 왔어. 친한 친구 3~4명이 돈을 모아 작은 원룸을 빌렸지. 어쩌다 보니 친구들이 모두 프리랜서거나 부업,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카페에서 쓰는 커피값이 상당하더라. "셋이 내는 커피값만 합쳐도 원룸 월세는 되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현실이 되었어.

퇴근 후에 반드시 거치는 곳이 되었어. 독립은 무섭지만, 나가서 살고 싶었지. 본가에 살면 누릴 수 있는 가사노동의 분배와 지원, 따뜻한 밥, 심리적 안정감은 유지하면서도 퇴근 이후의 삶을 바로 집으로 연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였어.

감히 말하건대, 내 인생은 아지트 전후로 나뉘어. 때론 잠도 자고, 친구들과 간단한 모임과 파티를 하기도 해. 신촌에 있을 땐 조금 더 무리해서 아래 층도 빌렸었어. 독서 모임이나 스터디 같은 걸 해보려고 했지. 8개월 만에 접었어. 공간 운영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퇴근하면 매일 아지트에서 저녁을 먹고 딴 짓을 해. 밀린 원고 쓰기부터, 글씨 쓰기, 친구들과 못다 한 잡담,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하기, 밀린 회사 일도 다 해. 어쩔 땐 이런 공간을 가진 게 행운이란 생각도 들어.

아, 혹시 궁금할 사람이 있을까 봐. 이 모든 자유에 한 사람 당 월 20만 원 정도 들어.

Q. 즐겨 듣는 음악은?

검정치마의 음악을 가장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특징을 보니, 인디와 오버 사이, 중간에 있는 뮤지션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 아예 모르는 가수를 발굴할 부지런함은 없는데, 그렇다고 멜론 TOP 100 같은 노래만 듣는 건 아직 용납이 안 되나봐.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이 망하기 전까지 모든 회차에 출석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데, 어린 시절 습득한 록스피릿이 이상한 자존심과 함께 음악 듣는 습관을 망쳐 놓은 게 아닌가 싶어. 게다가 마케팅이나 브랜딩 하는 사람들은 음악 듣는 것도 자유롭지 못해. 물론 그 자유는 내가 구속하고 있지만. 

이런 노래는 주로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있어. 최근엔 '민수'와 '오핑(Offing)'을 들어.

Q. 소울 푸드는?

간장계란밥. 조금 더 배고프면 스팸에 라면까지 곁들이지. 스타트업 하는 불효자였던 시절, 저녁 사 먹는 돈도 아까워 굶다가 이른 밤에 들어가서 먹던 메뉴야. 조리는 편한데, 열량과 영양(?)은 높고, 밥과 고기와 면을 모두 먹을 수 있는 '완전식품'이라고 좋아했어. 아마 내 체세포의 3%쯤은 간장계란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을까. 비슷한 메뉴로 한솥의 치킨마요가 있지.

힘든 시절에 먹은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다는데, 난 아직도 맛있어.

Q.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잠들기 직전 5분. 신이 나에게 내린 유일한 축복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때에 잘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알아. 침대에 누워 베개에 머리를 두고 눕는 순간 바로 잠들 것이라는 걸. 열에 아홉은 바로 잠들 수 있지. 곧 잠들 수 있는 나 자신이 좋아지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잠을 바로 마주하는, 바로 그 시간이 제일 좋아.

기숙사에 있을 때 별명이 스위치였어. 관자놀이에 버튼이 달려 있는 것 같다더라. 잠들기 직전엔 간단히 내일 할 일을 떠올려 보곤 해. 오늘 못한 건 뭐였는지, 오늘 왜 할 일을 다 해내지 못했는지 반성하지.

MBTI 검사를 하면 항상 ENFP 유형이라고 나와. ENFP의 단점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는 거라더라. 그래서 잠들기 전에 늘 다짐해. 내일은 오늘 못한 걸 하..(스위치 꺼짐)

Q. 마흔이 되면 어떨 것 같아?

아, 솔직한 심정으로 벌써 싫어. 20대를 더 막 보냈어야 했어.

가장 슬픈 건 체력이야. 20대 시절, 술자리에서 갓 서른을 넘긴 형들이 체력 운운하며 '미리 놀아둬' 라고 말하며 측은한 눈빛 보내는 게 정말 싫었거든. '어휴 꼰대들, 얼마나 나이 먹었다고 저러나' 싶어서.

최근엔 그 형들을 만나면 사과하고 있어. 난 나이를 먹으면 '재미'를 잃게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재미는 여전한데, 체력이 안 되어서 못 노는 거더라. 체면·체통·근엄함은 다 체력이 없어서 생기는 거야. 힘이 넘치면 그런 게 필요 없지.

그땐 자식도 있을 것 같고, 결혼도 했겠지. 모은 돈도 좀 있을 거고, 빚도 있을 것 같아. 뭔가 더 많이 가진 상태가 되겠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체력을 넘겨준다는 게 슬퍼.

2019년은 그 어떤 해보다도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해였어. 아주 작은 소원이 있다면, 2019년의 체력을 마흔에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쓰면서 벌써 슬프네. 10년 후에 이걸 보게 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래도 관리 잘해야지.

Q. 30대가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것?

기록을 남기고 싶어. 그것도 영상으로.

얼마 전에 친구들과 일을 하나 벌였어. 올해부터 5년 동안, 매년 12월의 마지막 주에 모두 모여 20~30분 동안 카메라 앞에서 나의 모습을 남기기로 했지. 질문은 한 스무 개 정도고, 매년 같은 질문을 하고 변해가는 나의 모습과 생각을 담아보기로 했어. 최근에 돌아다니는 빌리 아일리시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시작했어.

5년, 10년이 지나 영상이 쌓이면 소중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영화관에서 상영해보고 싶어. 마냥 젊지도, 그렇다고 노련하지도 않은 서른의 추억을 잘 남겨보고 싶어.

Q.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만의 길을 걸을 때나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때 주변의 반응은?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

신기해 해. 부러워하거나 존경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지.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부럽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아직 아닐 테니까.

사실 신기해 하는 그 시선이 좋으면서도 불편할 때가 있어. 신기함이란 낯섦에서 오는 거잖아. 누구나 본능적으로 낯선 것에 거부감을 느껴. 주변에 문학도 밖에 없는 환경에서 금융회사를 간다고 했을 때도,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아닌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커리어를 이어나간다고 했을 때도, 온갖 딴 짓을 하며 일을 벌일 때도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신기해 하면서 낯설어 했어.

낯섦, 거기서 오는 거부감은 인스타그램 따위엔 쉽게 표현하지 않지. 주로 술자리,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 들려오는 내 이야기에서 보여. 나이를 먹으니, 안부를 묻는 말에도 행복의 총량을 재단해보려는 시도들이 보일 때가 있더라.

'잘 못 지낸다'는 말이 나오면, 아주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나마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합리화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물론 반대의 사람들도 많지. 본인이 선택하지 못했던, 하지만 한때는 동경했던 삶의 모습을 내가 그리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절반은 될걸. 그런 사람들에겐 괜스레 고마워. 내 선택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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