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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막걸리에서는 내 마음의 맛이 나

내가 만든 막걸리에서는 내 마음의 맛이 나

Story Book밀레니얼 31인의 라이프스타일 다큐멘터리

16분

※ 30대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이 밀레니얼을 바라보는 기성 콘텐츠에 던지는 유쾌한 미시사적 다큐멘터리! '밀레니얼 31인의 라이프스타일 다큐멘터리' <일하는 밀레니얼이 먹고사는 이야기> 중 24화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 또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것을 추구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과 기량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다음'을 만들어가야 가장 특별해진다고 생각해.

Q. 왜 일해?

돈 벌려고 일하지!

사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렇게 의무감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일해오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가더라고. 계속해서 내 색깔이 담긴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고민만 해오다가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나, 왜 그 일을 하나 너무 궁금해서 소규모 모임을 찾아서 이야기를 들어봤어.

리뷰빙자리뷰나 월간서른, 남의 집 프로젝트 등 많은 모임에서 돈 먼저가 아니라 자기를 찾아가기 위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되었지. 나는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걸 그동안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

그때부터 나 자신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고,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와 내가 ‘뭘 잘했지’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부모님이 해오시던 일에 4대를 잇는다는 숟가락만 얹어서 직함을 달고 일했어. 나는 돈도 벌어야 하고, 4대니까, 해야지, 하는 의무감으로.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공간에서, 이렇게 오래 이어온 사업에 나도 뭔가를 기여하고 새로운 걸 만들고 싶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걸 종합해서 고민하다 생각난 게 양조장이었어.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닌, 과정은 느리고 손은 많이 가지만 뭔가 근원적이고 따뜻한 온도감을 가진 모든 것에 나는 매력을 느끼거든. 그건 누군가 쉽게 따라 할 수도 없고, 우리 가족이 해오던 이 식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디자인을 공부했고, 항상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어. 그래서 현재 만드는 수제 막걸리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고 있지.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만드는지에 따라, 내가 만든 레시피에 따라, 막걸리의 맛이 매번 달라져. 그 결과를 바로 손님과 음식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언제나 진심으로 할 수밖에 없어.

나는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진짜 내 모습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고, 또 이 일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고 있기도 한 것 같아.

이젠 이게 내가 내 일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야.

Q. 어쩌다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됐어?

대학교에서 금속공예와 세라믹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패션업계에서 6~7년 정도를 일했어. 그러다가 부모님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자리를 옮겨 확장하게 되면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고, 나도 가족이 대를 이어 꾸준히 해오는 일을 함께하는 게 의미가 크겠다 싶어서 전혀 다른 업종인 외식업에 발을 담그게 되었어.

처음에는 '이 오래된 노포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깊었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한동안 의무감으로 일하긴 하는데, 내가 이곳에서 잘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겠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소모되는 기분이 들더라. 점점 일도 재미가 없더지더라고.

그런 지루함이 계속되자 딴짓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요새 '핫'하다는 한식 주점들을 찾아가보는 거였어. 술 마시는 것도 좋았지만, 노포에서는 쉽게 적용할 수 없었던 것들을 접해볼 수 있어서 속이 시원한 기분이었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통주를 접하게 되었고, 안주에 대해 새로이 해석하는 방법도 더 알고 싶어서 여러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 우리 술과 안주에 대해 배우는 막걸리 학교의 ‘주안상’ 수업, 전통주 초급, 중급, 고급반 그리고 가양주 연구소의 전통주 소믈리에 과정 등 많은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깨달은 게 있었어.

나는 와인이나 사케, 위스키는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마셨는데, 이렇게 훌륭한 전통주가 있다니!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고, 나 이외에 다른 많은 사람도 전통주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점 또한 아쉬웠어. 수제 막걸리의 매력은 직접 내 손을 거쳐서 적정한 온도와 시간을 견뎌야만 도자기처럼 빚어진다는 거야. 이 점이 무척 흥미로웠지.

현재 운영하고 있는 가게의 1층 일부를 분리해서 양조장을 만드는 것에 대해 반대가 분명 있었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수제 막걸리를 찾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 애주가로서 볼 때 전통주는 너무나 훌륭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술이거든.

그리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을 양조장 밖에서 다 볼 수 있도록 통유리를 설치해 이 술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소비자와 공유하고 싶었어. 나는 느리지만 따뜻한 온도감이 느껴지는 이 수제 막걸리가 분명 그 자체로도 가치가 높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음식이 될 거라 생각해. 동시에 4대째 이어오는 한식당의 대표 술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현재 일에 임하고 있지.

역전회관 1층에서 전통주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유정

Q. 쉴 때 뭐해?

최근에는 쉬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책에서 받는 위로가 크기 때문이지. 사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생길 때 그 문제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끔 도와주는 게 책인 것 같아.

머리가 복잡할 때는 글씨가 빼곡한 책보다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 시리즈를 많이 보고 있어. 주제는 때로 심오하거나 진지하지만 그림은 간단하고 디테일이 귀여운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보고 나면 웃음이 피식 나. 그러면서 내가 조금 전에 가지고 있던 고민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어서 좋아.

Q. 취미가 뭐야?

요새 가장 빠져 있는 취미는 영상편집이야. 여행도 요리도 좋아하는데, 이 경험들을 기록해 보려고 시작한 게 취미가 되어버렸어. 핸드폰으로 찍고 어플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영상을 편집해. 동영상이 사진보다 훨씬 전달이 쉽고, 당시의 그 상황을 기록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아.

영상편집을 하다가 거의 밤을 샌 적도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집하곤 해. 이 취미를 하고 있는 일에도 적용해, 술 소개 영상도 직접 찍고 SNS에 업로드하지. 내가 약간 ‘내성적인 관종' 기질이 있는데, 하다 보니 나의 내성적인 성향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취미야.

Q.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최근 일도 늘고 활동이 많아졌는데, 집에서 가장 많이 보내는 공간은 내 방의 침대야.

침대 바로 옆에 책장이 있는데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쟁여뒀다가 그날그날 끌리는 책을 펴서 침대 위에서 보기도 하고,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때 정말 쉬는 느낌이 들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가장 편한 공간이라서, 사람을 많이 만나서 지친 날이나 일 때문에 체력이 떨어진 날에도 침대에서 자거나 놀고 나면 금방 충전돼.

Q. 집 외에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여유가 좀 있을 때는 서점을 가는 편이야. 서점에 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때로는 영감을 얻을 수도 있거든. 요새는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츠타야 서점처럼 구성도 재미있고 좋은 책을 소개하는 서점들이 여럿 생겼더라고. 그래서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거나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 같아.

특히나 좋아하는 서점은 최인아 서점이야. 최인아 대표님과 서점 직원 분들이 직접 읽어보고 추천하는 글도 좋고, 그 서점의 공간 자체도 햇빛이 잘 들어서 좋아. 게다가 가끔은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도 열려서 시간이 맞으면 신청해서 들으러 가는 편이야.

Q. 즐겨 듣는 음악은?

음악은 장르 구분 없이 거의 좋아하는 편이라 기분에 따라 듣는 편인데,그래도 가장 즐겨듣는 장르는 재즈야. 최근에 성수동에 있는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라는 곳에 가서도 재즈 공연을 보고 왔어. 재즈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정해진 박자와 틀 안에서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즉흥적인 불규칙성이 존재하는 게 흥미로워서야. 그게 재즈의 매력인 것 같아. 같은 곡이지만, 연주자에 따라 매번 다른 곡이 탄생하는 것, 그리고 연주자들 간의 호흡에 따라서도 때마다 하나의 특별한 곡이 만들어지는 것도 재미있어.

Q. 소울 푸드는?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바싹불고기와 선지술국. 아빠가 하던 가게에서 늘 먹던 음식이라 언제 먹어도 맛있고, 특히 심신이 지쳐 있을 때 먹으면 힘이 나는 기분이 들어.

어느 책에서 봤던 글인데, “음식은 추억이다”라는 말이 와 닿았어.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처럼 나에게는 이 음식들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따뜻했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해. 그래서 언제 먹어도 행복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나의 소울푸드야.

Q.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수제 막걸리를 양조하는 일이 상노동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동 후 쉬는 저녁 시간을 가장 좋아해. 그 시간에는 평소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도 떨면서 별 생각 없이 가장 단순하게 보낼 수 있거든.

그리고 밤은 창의적인 시간이라서 좋아. 선천적으로 어두운 밤에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편이거든.

Q. 마흔이 되면 어떨 것 같아?

30대 후반이 되면서 나의 생각과 철학, 감정 등이 20대의 나와 크게 달라졌다는 걸 느껴. 수많은 경험을 했으니까. 이런 변화는 근래에 더 느끼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아.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을 통해서 나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과정이라서, 얼마 남지 않은 마흔에는 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모든 일에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내 색깔을 담아내는 새로운 일들을 더 벌일 수 있지 않을까.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수록 일에 대한 확신, 그리고 나에 대한 자신감이 더 높아지는 것 같아.

Q. 30대가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것?

30대가 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책을 쓰는 거야. 최근 양조장을 만들어서 술 빚는 일을 하고 있는데, 직접 그림을 그려서 전통주에 대해 쉽게 소개하고 싶기도 하고, 양조장을 만들면서 겪은 우여곡절이나 가업을 잇는 4대로서 엄마와 함께 일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내보고 싶어.

37살에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느꼈던 이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려면 마흔이 되기 전에는 빨리 기록하고 표현해내야 할 것 같아. 30대 후반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책으로 펴내면,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무엇보다도 나에게 정말 의미 있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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