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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서예, 묵언수행, 외향적인 맥주 마케터의 반전 취미

고양이, 서예, 묵언수행, 외향적인 맥주 마케터의 반전 취미

Story Book밀레니얼 31인의 라이프스타일 다큐멘터리

15분

※ 30대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이 밀레니얼을 바라보는 기성 콘텐츠에 던지는 유쾌한 미시사적 다큐멘터리! '밀레니얼 31인의 라이프스타일 다큐멘터리' <일하는 밀레니얼이 먹고사는 이야기> 중 24화입니다.
일이 재밌으면 노는 것보다 짜릿할 때가 많아.

Q. 왜 일해?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생산해내는 기분을 좋아해. 사회 초년생일 때 매일 체력만 축내며 일을 하다가 ‘어차피 나는 평생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럼 일을 해야 하는데 하루의 반 이상을 일에 쓰면서 그 시간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으면 내 인생 너무 불쌍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적성과 가치관에 맞지 않았던 그 회사를 일단 가뿐한 마음으로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생산할 때 행복한’ 나의 성향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곳을 운 좋게 찾아냈지.

일이 재밌으면 노는 것보다 짜릿할 때가 많아. 아직은 일을 하는 데 대의적인 이유는 없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조건이나 이유가 없듯 나에게는 일도 ‘그냥 기분을 좋게 하니까’ 좋은 존재야. 앞으로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고 만드는 것이 내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미션일 거야.

Q. 어쩌다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됐어?

솔직히 운이 정말 좋았어. 지금 다니고 있는 제주맥주를 론칭하기 약 9개월 전, 극소수의 인원만 있는 상태에서 입사했는데, 면접 볼 때 ‘우린 곧 제주도에서 맥주 양조장을 열 예정이다’라고 면접관(현재 나의 보스)이 말하더라고. 그때만 해도 도대체 무슨 그림을 그린다는 건지 이해를 못 하고 일단 ‘알았다’고 했지.

론칭 전 먼저 유통하고 있던 글로벌 파트너사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맥주를 좋아했고, 브루클린 브루어리 코리아 페이스북에 채용공고가 떴길래 '브루클린 브루어리 코리아인가 보다' 하고 입사한 거였거든.

‘행복한 일을 찾기 위해’ 무작정 퇴사 후, 네트워크도 경험도 충분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럼 내가 미친 듯이 좋아하는 두 가지, 크래프트맥주 또는 책과 관련된 마케팅 기획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라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거야.

브랜드가 없는 상태에서 합류했고, 바로 위 보스와는 연차 차이가 컸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별별 일을 다 했어. 하루종일 까대기(물건 옮기고 정리하는 일)만 하는 날도 많았지. 론칭한다는 회사 이름도 투표로 결정하던 때라 처음 1년은 ‘이 회사 월급 밀리는 거 아닌가’, ‘도대체 난 뭘 하고 있나’, ‘탈출이 답이다’ 싶은 순간들이 부지기수.

하지만 ‘이것도 내가 하나’ 싶었던 마음이 어느새 ‘이런 것도 만들어봐야지!’라고 바뀔 때까지 수많은 터닝포인트들이 생겨났고, 함께 만들어냈어. 다양한 노력을 통해 일하는 환경부터 동료의 태도까지,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말과 행동을 엄청나게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걸 절감한 3년이었지. 그게 스타트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고.

초반에는 보스와 나의 관계가 거의 파국(!)으로 치달았어. 하지만 이젠 회사의 성장뿐 아니라 ‘일하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 이 조직은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하나의 마음으로 고민하는 사이가 됐지. 우리가 겪어온 이 관계의 변화, 조직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어딘가에 글로 써서 연재하자고 다짐할 만큼 발전했어.

Q. 쉴 때 뭐해?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어. 최근 몇 달은 건강 문제로 술을 거의 끊은 상태지만 책은 여전히 마시듯 읽고 있어. 가장 좋아하는 휴일도, 핸드폰은 거의 안 보고 아침에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책 읽고 고양이들이랑 놀고 끄적끄적 글을 쓰는 일만 반복하는 날. 일주일에 하루는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해. 이런 주말이 하루라도 있었는 지에 따라 그 다음 주가 시작될 때 텐션 차이가 어마어마하더라고.

Q. 취미가 뭐야?

집에서 책 읽고 고양이랑 놀고 글 쓰는 게 가장 행복한 취미야. 가끔은 오랜 시간 서예를 하는데, 이때 정신적으로 정화가 많이 돼.

초등학생 때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해서 주변의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다가, 문득 몰입에서 깬 순간 주변의 일상적인 소음들이 굉장히 크게 고막으로 빨려들어온 신기한 경험이 두 번 있었어. 한 번은 책을 읽을 때, 다른 한 번은 서예를 할 때였지. 성인이 된 지금도 이 두 가지를 할 때는 쉽게 몰입돼.

밖에서는 에너지를 계속 발산하는 매우 외향적인 성격이라, 고요하고 정적인 취미 활동을 할 때 충전되는 것 같아.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취미생활인 서예. 서예를 할 때는 금방 깊게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사진은 반야심경의 한 구절을 옮겨쓴 것. ⓒ오정현

Q.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내 방을 제일 좋아해. 대외 활동을 어느 정도 하는 편이고, 인스타에 기록을 많이 해서 ‘엄청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이구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집순이로 통해. 20대 중반 독립한 이후로는 내 집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꽉 채워둘 수 있었기 때문에 집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졌어. 방에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은 딱 세 가지야. 책 잔뜩, 술 잔뜩, 그리고 나의 주인님들인 고양이 두 마리의 가구와 물건들 잔뜩.

Q. 집 외에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좋아. 학교는 ‘다닐 땐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그립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교가 그리울 걸 너무나 잘 알았어. 지식에 대한 순수한 욕망과 해소가 신선한 호흡처럼 늘 존재했고, 의지하고 존경할 수 있는 평생의 친구들과 함께였고, 가치관이라는 인생의 닻을 단단히 맨 곳이였고,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본 시간들이 곳곳에 묻어있잖아.

그래서 환기가 필요할 때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었을 때 모교의 교정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시절의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곤 해.

Q. 즐겨 듣는 음악은?

주로 국내 인디, 팝, 재즈를 들어. 늘 에어팟을 꽂고 무언갈 듣기는 하지만 나만의 뮤지션을 열심히 찾는다거나 음악에 심취하는 편은 아냐. 음악을 사랑하는 아빠나 동생이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메모해두었다가 그 뮤지션의 곡을 쭉 스트리밍하지. 그래서 음악만 들려주면 다들 ‘어? 이거 들어봤는데?’ 하지만 뮤지션의 이름과 음악의 제목은 절대 맞추지 못해.

Q. 소울 푸드는?

안동 헛제삿밥. 안동에서 먹어본 적은 없고 안동이 고향인 외할머니가 많이 만들어주셨었어. 제사 음식과 같은 재료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건데 실제로 제사를 지낸 음식이 아니어서 ‘헛제삿밥’이라고 해. 고사리나물, 무나물, 콩나물, 도라지나물 등등을 넣어 고추장 없이 무국 같은 국물로 비벼서 간고등어와 함께 먹는 한 상으로 기억해.

어릴 때 외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어. 그래서 그 한 끼를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어 좋은 나물을 사다 깨끗이 씻고, 다듬고, 말리고 몇 날 며칠 들여다보며 정성을 기울인 백발의 자그마한 외할머니 모습을 많이 봤어. 어린 나이에도 그 정성이 너무 감사하고 따뜻해서 더 맛있었던 헛제삿밥은 매번 그릇을 싹싹 긁어 먹었었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 나의 영혼을 가장 촉촉하게 적셔주는 것 같아.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외할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이 모두 나의 소울푸드네.

Q.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매일의 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일찍 퇴근하고 저녁 약속이 없어 바로 집에 도착했을 때. 아늑한 집에서 사랑하는 고양이 두 마리와 마음껏 놀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통통한 치약처럼 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고양이들만 보고 있으면 불행이 끼어들 틈이 없지. 동생과 나는 그런 시간을 '냥테라피 타임'이라고 불러.

냥테라피♡ ⓒ오정현

Q. 마흔이 되면 어떨 것 같아?

인생이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확실한 건 나만의 색깔이 더욱 짙어질 것 같아. 그때가 되면 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시간을 흘러가버리는 것보다는 쌓여가는 대상으로 보고 있어.

서른아홉 해라는 시간의 세례로 더 명료한 시선과 넓은 세계, 선택의 자유를 누릴 거라는 기대를 해. 서른 살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고마워하듯, 마흔 살의 나도 30대의 나에게 고마워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어.

Q. 30대가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남은 생 동안 ‘원활하게 기능하는’ 건강한 몸의 토대를 잘 만들어보고 싶어. 30대엔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즉각 신호가 오지는 않지만, 40대에 30대의 몸이 하는 복수를 당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그게 조금 빨리 왔어.

20대 중후반까지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30대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거든. 20대엔 ‘체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의 대명사였는데 어느새 ‘병원 콜렉터’가 되어버린 거야. 입원도 몇 번 하고 툭하면 앓아 누워 말 그대로 통렬한 반성을 했어.

그리고 올해는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니지만 내겐 큰 결심이었던 다섯 가지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어. 금주 수준의 절주(그 전엔 술고래였다.), 생협에서 산 식재료들로 간단한 밥 해 먹기(그 전엔 할 줄 아는 거라곤 계란프라이뿐이었다), 매일 소독 수준으로 집 청소하기(그 전엔 사람 사는 집인지⋯.), 일주일에 3일 이상 땀 흠뻑 흘리며 운동하기(3년 전 발등 골절 이후로 운동을 쉬다 보니 영원히 쉴 뻔했다.), 되도록 저녁 약속을 잡지 말고 몸이 편안한 상태에서 일찍 자기(사실 이건 잠이 많아서 쉽게 달성).

삶의 질이 180도 달라지는 것을 보름 만에 느끼며 ‘이 쉬운 걸 왜 안해서 그 많은 시간을 버렸나’ 싶었어.

지극히 작은 일상들을 정성껏 돌보며 반짝반짝 윤을 내는 기분이 참 좋아. 자연스럽게 내 일상의 모든 부분에 긍정적인 파동을 만들고 있기도 하고. ‘하루 20분 투자를 귀찮아해서 24시간을 고통받는 현대인들이 너무 많아요.’ 내 삶을 바꾼 한의사 선생님의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40대부터의 내가 30대의 내 덕을 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남은 30대를 잘 살 예정이야.

Q.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만의 길을 걸을 때나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때 주변의 반응은?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

예전에 동생이 ‘언니 고찰하기’라는 편지를 줬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어.

‘언니가 뭐 하나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주변에 ‘이거 할까 말까?’라고 물어본다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의견 물어보는 게 별 소용이 없다. 팔랑귀가 아니고 무쇠귀다. 무언가가 하고 싶어진 언니의 마음을 바꾸려면 언니랑 아주 가까운 사람 10명 이상이 이틀 이상 설득 + 언니와 별 관련 없는 제3자의 의견 다섯 개 정도가 필요하다. 언니의 결정은 참 바꾸기 힘들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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